미국의 얼굴을 새긴 산, 마운트 러시모어(Mount Rushmore)

러시모어 전경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블랙힐스(Black Hills) 깊숙한 산자락, 회색빛 바위 절벽 위로 네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바로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조형물, 러시모어 산 기념조각(Mount Rushmore National Memorial)이다.

신성한 땅 위에 세워진 계획

러시모어 산이 위치한 블랙힐스 지역은 북미 원주민 라코타족에게 신성한 땅으로 여겨져 왔다. ‘파하 사파'(Paha Sapa), 즉 ‘검은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금광개발과 함께 미국정부가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1920년대 들어, 사우스다코타 주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서부 개척 시대 인물들의 조각을 세우자는 구상이 나왔지만, 곧 미국 전체를 상징하는 기념조형물로 계획이 변경됐다. 여기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조각가 거츠언 보글럼(Gutzon Borglum)이다.

네 명의 얼굴, 미국을 새기다

러시모어 클로즈업

보글럼은 단순한 지역 상징을 넘어, 미국의 탄생과 확장, 통합, 발전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독립과 건국,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대륙 확장과 민주주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남북전쟁과 통합,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산업 성장과 세계 강국으로의 도약을 각각 상징한다.

최초 계획은 이 인물들의 상반신까지 조각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기술적 한계, 조각가의 사망(1941) 등으로 인해 얼굴 부분만 완성되는 것으로 변경된다. 현재 우리가 보는 러시모어는 애초 구상에 비해 축소된 형태지만, 그 압도적인 존재감만큼은 그대로다.

조형미와 제작 과정

러시모어 산 조각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규모와 기술에 있다. 각 얼굴의 높이는 약 18m, 전체 폭은 57m에 이른다. 작업은 1927년부터 시작돼 14년에 걸쳐 이어졌으며, 폭발물을 활용한 대규모 채석과 정교한 조각 작업이 병행됐다.

화강암 절벽이라는 단단한 재료와 험준한 지형 속에서도, 인물들의 표정과 윤곽은 정밀하게 구현됐다. 특히 자연광의 흐름을 고려해 조각된 얼굴들은 시간대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러시모어 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자, 자연과 인간 기술의 결합을 보여주는 사례다.

논란과 그림자

러시모어 산은 미국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원주민 공동체에게는 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1868년 ‘라라미 조약’을 통해 블랙힐스 지역은 라코타족에게 영구 소유권이 보장됐으나, 금광 개발과 연방정부의 개입으로 약속은 깨졌다. 이 땅에 조각을 새긴 행위 자체가 원주민들에게는 상처로 남아 있다.

조각가 보글럼의 정치적 성향도 논란의 일부다. 그는 극우적 주장과 인종차별적 언급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이런 개인적 배경 역시 러시모어 산을 둘러싼 평가를 복잡하게 만든다.

오늘날의 러시모어 산

러시모어산 행사

현재 러시모어 산은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미국 대표 관광지이자, 역사 교육과 애국심 고취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매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행사, 각종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며, 방문객들은 박물관과 전시관을 통해 조각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라코타족 등 원주민 공동체는 블랙힐스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러시모어 산을 미국 이상과 모순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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