ᅳ 폭력의 기억을 예술로 봉합한 두 마리 새 이야기 ᅳ
메데인 시내의 보테로 광장(Plaza Botero), 보테로의 대표적 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By Steffen Schmitz (Carschten),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영원한 봄의 도시”와 보테로
해발 약 1,500미터에 자리한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Medellín)은 사계절 내내 기온이 온화해 ‘영원한 봄의 도시’라 불린다. 따뜻한 햇살과 활기찬 문화가 어우러져 여행자들에게 늘 매력적인 곳이다.
메데인의 도심을 걷다보면 이 도시를 대표하는 예술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의 독특한 조각 작품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산 안토니오 광장(Plaza San Antonio)의 새 조각은 메데인의 아픈 기억과 맞닿아 있는 특별한 상징물이다.
1995년의 폭탄 테러
1995년 6월 10일 밤, 산 안토니오 광장에서 열린 야외 공연 중 보테로의 새 조각 ‘엘 빠하로(새, El Pájaro)’ 아래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일부 매체에 따르면 이 폭발로 23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사건의 배후에 대해서는 여러 추정이 뒤따랐다. 일각에서는 콜롬비아 좌익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공식 수사에서 는 끝내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았다.
평화의 새
보테로는 파괴된 조각을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 부서진 원작은 그 자리에 상처의 증언으로 남겨두고, 2000년에 같은 모양의 새 조각을 다시 만들어 그 옆에 나란히 배치했다.
그는 새 조각에 ‘엘 빠하로 데 라 빠스(El Pájaro de la Paz, 평화의 새)’라는 이름을 붙여 희생자 추모와 폭력에 대한 단호한 메시지를 남겼다. 새로 세운 조각의 받침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메데인 산안토니오의 파괴된 〈새〉와 새로 세운 〈평화의 새〉.
By Quetecuentasti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두 마리의 새가 만드는 풍경
오늘날 광장에는 두 마리의 새가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폭발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은 채 과거를 증언하고, 다른 하나는 온전히 서서 새로운 평화를 말한다. 같은 형상 속에 공존하는 상반된 메시지는 단순한 조형적 대비를 넘어, 도시가 겪은 폭력과 그 위에 세운 평화의 의지를 압축한다. 그래서 이곳은 메데인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멈춰 서는 기억의 장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