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의 대표적인 두 다리, 아돌프 다리와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룩셈부르크시는 깊은 계곡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요새 지형 위에 세워졌다. 천혜의 방어막이었던 이 지형은 도시가 성장하면서 사람과 교통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룩셈부르크시는 수많은 다리가 도시 곳곳을 잇는 ‘다리의 도시’로 변모했다. 그중 아돌프 다리(Pont Adolphe)와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Pont Grande-Duchesse Charlotte)는 단절된 도시 공간을 연결하고 도시의 확장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요새도시 밖으로 향한 아돌프 다리

2017녀까지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사진은 2018년의 아돌프 다리 모습이다.

보수공사 후 2018년의 아돌프 다리. 아치 아래에 보행자·자전거 통로가 설치되었다.

By Denise Hastert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아돌프 다리(Pont Adolphe)는 현지에서 ‘새 다리’라는 뜻의 누벨 퐁(Nouveau Pont) 또는 나이 브렉(Nei Bréck)으로도 불린다. ‘옛 다리’는 1859~1861년에 건설된 비아뒤크(Viaduc), 즉 파스렐(Passerelle)을 가리킨다.

두 다리의 명칭에는 룩셈부르크의 도시 변화가 담겨 있다. 1867년 런던조약 이후 요새가 철거되면서 룩셈부르크시는 성벽 밖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기차역은 요새 바깥의 부르봉 고원에 자리했지만 구시가지와 역 지구 사이에는 깊은 페트뤼스 계곡이 놓여 있었다.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고 두 지역을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새로운 다리가 계획되었다.

1900~1903년에 걸쳐 진행된 아돌프 다리의 건설 현장 모습

1900~1903년 아돌프 다리의 건설 현장 (샤를 베른회프트 촬영)

By Charles Bernhoeft (1859-1933),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초기 설계는 룩셈부르크 기술자 알베르 로당주(Albert Rodange)가 맡았고, 대형 석조 아치의 전문가였던 프랑스 기술자 폴 세주르네(Paul Séjourné)가 참여했다. 세주르네는 하나의 두꺼운 아치 대신 서로 평행한 두 개의 석조 아치가 상판을 나누어 받치는 방식을 채택했다.

1900년 7월 14일 아돌프 대공이 초석을 놓았으며, 그의 이름을 딴 다리는 1903년 7월 24일 개통되었다. 중앙 아치의 경간은 84.65m로, 완공 당시 석조 아치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전체 길이는 153m이고 상판은 페트뤼스강 위 약 42m 높이를 지난다. 다리 위로는 한때 룩셈부르크와 에히터나흐를 연결한 협궤열차 ‘샤를리(Charly)’도 운행했다.

아돌프 다리의 상판 아래에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도로가 설치되었다.

아돌프 다리의 상판 아래에 설치된 보행자·자전거 통로.

By Myriam Thyes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하늘에서 내려다본 룩셈부르크의 아돌프 다리와 페트뤼스 계곡의 모습. 다리 위로 노면전차가 달리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룩셈부르크의 아돌프 다리와 페트뤼스 계곡.

By GilPe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아돌프 다리는 전통적인 석조 아치와 당시의 신기술인 철근콘크리트 상판을 결합한 교량이었다. 2014~2017년 보수공사에서는 구조를 강화하고 노면전차 선로를 설치했으며, 두 주 아치 사이에는 길이 154m의 보행자·자전거 통로를 매달았다. 20세기 초 도시 확장을 상징했던 다리는 오늘날에도 도로와 노면전차, 보행자와 자전거가 함께 이용하는 교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키르히베르크로 향한 붉은 다리

파펜탈 계곡을 가로지르는 붉은 빛의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파펜탈 계곡을 가로지르는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By Johnny Chicago at lb.wikipedia,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아돌프 다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는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Pont Grande-Duchesse Charlotte)가 파펜탈 계곡(Pfaffenthal)을 가로지른다. 붉은 상판 때문에 룩셈부르크어로 ‘루트 브렉(Rout Bréck)’, 프랑스어로 ‘퐁 루주(Pont Rouge)’라고도 불린다.

이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통합과 함께 탄생했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출범하면서 룩셈부르크는 유럽기구의 주요 소재지가 되었다. 정부는 도심 동쪽의 키르히베르크 고원을 새로운 업무지구로 개발하고자 했지만, 그 사이에는 알제트강이 흐르는 깊은 파펜탈 계곡이 놓여 있었다.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아래로 알제트강이 흐른다.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알제트강. (아래쪽은 1684년에 세워진 베인헨 다리)

By Cayambe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1957년 국제 설계공모에서 독일 건축가 에곤 윅스(Egon Jux)의 설계가 선정되었다. 비스듬한 강철 교각이 긴 상판을 떠받치는 현대적인 교량으로, 1962년 착공해 1966년 10월 24일 샤를로트 여대공에 의해 공식으로 개통되었다.

다리는 길이 355m, 주요 경간 약 234m이며 알제트강 위 약 74m 높이에 놓여 있다. 20세기 초 석조 아치 기술을 보여주는 아돌프 다리와 달리, 붉은 강철 상판과 기울어진 교각은 전후 시대의 간결한 공학적 미감을 드러낸다.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위를 운행하는 노면전차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 위로 파펜탈–키르히베르크 구간을 운행하는 노면전차

By Mohamed SY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다리가 연결한 키르히베르크에는 이후 유럽사법재판소와 유럽투자은행 등 여러 유럽연합 기관이 들어섰다. 2015~2018년에는 노면전차 운행을 위해 상판을 넓히고 구조를 보강했다. 오늘날 이 다리는 자동차뿐 아니라 노면전차와 자전거, 보행자를 수용하며 도심과 유럽기관 지구를 잇는 핵심 교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에 도시를 넓힌 다리

룩셈부르크의 깊은 계곡은 오랫동안 도시를 지켜준 방어선이었지만, 요새의 시대가 끝난 뒤에는 도시의 성장을 가로막는 경계가 되었다. 도시가 계곡 너머로 확장될 때마다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고, 아돌프 다리와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는 그중 서로 다른 시대를 대표한다.

1903년 아돌프 다리는 페트뤼스 계곡을 넘어 기차역 지구로 향했고, 1966년 샤를로트 여대공 다리는 파펜탈을 건너 키르히베르크로 나아갔다. 돌의 아치와 붉은 강철이라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세워졌지만, 두 다리는 모두 룩셈부르크가 새로운 도시 공간으로 확장되던 순간을 오늘까지 이어주고 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