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을 가로지른 상상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 사이에는 길이 1.6km 남짓한 좁은 수로가 놓여 있다. 이 해협의 이름은 1846년, 탐험가 존 프리몬트(John C. Frémont)가 콘스탄티노플의 ‘금각만(Golden Horn)’에 빗대어 ‘골든게이트(Golden Gate)’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그로부터 거의 한 세기 뒤인 1937년, 이곳에 다리가 세워지면서 ‘골든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개통 당시 골든게이트 브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현수교였다. 물론 그 기록은 이미 오래전에 깨졌지만, ‘세상 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라는 명성만큼은 여전히 금문교에 머물러 있다.
불가능을 건너다
1920년대, 해협에 다리를 놓겠다는 계획은 무모해 보였다. 강풍, 조류, 안개, 그리고 지진. 모든 조건이 불리했고, 많은 기술자들이 건설 불가를 주장했다. 그러나 도시와 만을 연결하겠다는 의지는 거센 반대 속에서도 공사를 추진하게 만들었고, 1933년 마침내 착공이 시작되었다.
설계와 공학을 맡은 조셉 스트라우스(Joseph Strauss)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안전망을 설치해 19명의 노동자 생명을 구해냈고, 이들은 스스로를 “죽다 살아난 자들의 클럽(Halfway to Hell Club)”이라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다리 공사에는 약 120만 개의 리벳이 사용되었다. 공사는 계획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고, 예산도 절감되었다.
미학이 된 공학
골든게이트 브리지는 단순히 구조적 성취로만 완성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외형 설계를 맡은 건축가 어빙 모로(Irving Morrow)는 주택과 상업용 건물 설계 경험밖에 없었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결정적인 감각을 발휘했다.
그는 교각에 아르데코(Art Deco) 양식을 적용해 구조물에 시대적 미감을 불어넣었고, 색상에서도 미 해군의 검정·노랑 경고색 제안을 물리치고 ‘인터내셔널 오렌지’를 선택했다. 이 대담한 색은 도시의 안개와 해협의 풍경 속에서 다리의 윤곽을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
다리는 단순한 통근 경로가 아니다. 미국 국도 101번과 캘리포니아 주도 1번이 지나가며,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2.7km에 이르는 다리를 천천히 걸으며 바다와 도시,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구조물의 곡선을 감상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쪽에는 방문자 센터가 있고, 다리의 역사와 구조를 다룬 전시도 마련돼 있다.
도시를 만든 풍경
금문교는 직접 걷는 경험도 특별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일 수 있다. 골든게이트 국립휴양지의 언덕과 해변, 특히 커비 코브(Kirby Cove)는 일출과 야경을 담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붉은 아치는 도시의 풍경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 구조물은 수많은 영화, 드라마, 광고에 반복적으로 등장해 왔다. 《수퍼맨》, 《엑스맨》, 《혹성탈출》 같은 작품에서 금문교는 때로는 위기의 상징으로, 때로는 희망의 배경으로 그려진다. 이 다리가 파괴되거나 지켜야 할 대상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단순한 시각적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금문교는 오래전부터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상징, 구조를 넘다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금문교는 강풍으로 단 세 차례만 폐쇄되었다. 수많은 지진과 풍랑 속에서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다리는 여전히 든든한 교량으로 기능하면서, 이제는 상징으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1911년, 골든게이트 브리지가 세워지기 전,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를 “해법을 찾을 줄 아는 도시 (a city that knows how)”라 불렀다.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가 세상에 보낸 가장 아름다운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