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린쿠유 지하도시가 자리한 데린쿠유 마을의 지상 모습
By Chanilim714,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터키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역에 위치한 데린쿠유(Derinkuyu) 지하도시는 단순한 동굴 유적이 아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했던 완전한 ‘지하도시’이며, 지상 세계가 위협받던 시기에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깊고, 얼마나 클까

데린쿠유 지하도시 복원도
By Yasir999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데린쿠유는 최대 깊이 약 85미터, 현재까지 확인된 층수만 18층 이상이다. 방 몇 개가 이어진 구조가 아니라, 주거 공간·곡물 저장고·가축 우리·와인 저장실·교회·학교까지 갖춘 도시형 설계다. 수천 명이 수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수직으로 뚫린 환기 샤프트다. 이 구조물은 공기 순환뿐 아니라 우물의 기능도 겸해, 오늘날 기준으로 보아도 매우 합리적인 공학적 해법을 보여준다.
언제, 왜 만들어졌을까

기독교인들은 적의 박해를 피해 이 지하도시들로 숨어들었다.
By © Nevit Dilmen,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데린쿠유의 초기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기본적인 굴착은 히타이트(Hittites)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만 지금과 같은 대규모 지하도시는 7~8세기경, 로마 제국 이후 이어진 정치·종교적 불안 속에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본격적으로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지하로 내려간 이유는 단순했다. 숨기 위해서였다.
방어를 위해 설계된 도시
데린쿠유의 통로는 의도적으로 좁고 낮다. 침입자는 몸을 숙여야만 이동할 수 있고, 그 끝에는 안쪽에서만 굴릴 수 있는 원형 석문이 놓여 있다. 공격자가 지하로 침입하더라도 즉각 봉쇄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장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내부의 원형 석문
By © Nevit Dilmen,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층과 층은 단순히 이어지지 않으며, 일부 통로는 막다른 길로 끝난다. 이 도시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방어를 전제로 한 은신 도시였다.
신앙은 땅속에서도 이어졌다
지하 깊숙한 곳에는 십자가 형태의 교회가 남아 있다. 낮은 천장과 희미한 빛 속에서도 사람들은 예배를 이어갔다. 이는 데린쿠유가 비상시에 잠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일상과 신앙이 지속되던 생활 공간이었음을 말해준다. 지상의 박해가 거셀수록 신앙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오늘날의 데린쿠유
데린쿠유는 1960년대 한 주민이 주거 공간을 정비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현재 이 지하도시는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문화유산이자 관광지로 자리 잡았으며, 매년 많은 방문객이 유적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찾고 있다.
데린쿠유는 과거 이 공간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기술적 성취를 과시하기 위해 조성된 유적은 아니다. 이 지하도시는 사회적 불안과 외부 위협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과 공동체 유지를 위해 선택한 주거 방식과 공간 활용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