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pexels 이미지
위에서 보면 네모난 도시
구글 지도로 바르셀로나를 검색해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도시의 일정한 구획이 마치 바둑판처럼 정확히 정렬돼 있다는 점이다. 평면에서 본 바르셀로나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도시라기보다는 정확하게 설계된 구조물에 가깝다. 컴퓨터 회로나 칩 구조를 연상시키는 이 모습은 19세기 중반, 도시계획가 이들레폰소 세르다(Ildefons Cerdà) 에 의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세르다는 기존의 혼잡하고 비위생적인 도시 구조를 대체할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가 제안한 ‘세르다 플랜(Cerdà Plan)’ 은 바르셀로나를 바깥으로 확장하면서, 햇빛, 공기, 녹지, 도로, 건물 간 거리까지 모두 계산한 근대적 도시계획의 시초였다.
이 계획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역이 바로 오늘날 바르셀로나의 에이삼플레(Eixample) 지구다. 스페인어로 ‘확장’을 뜻하는 이 이름은, 구도심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격자는 단순한 네모가 아니다
세르다가 설계한 격자 구조는 보기에는 단순한 사각형의 반복 같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공학적, 위생학적 고민이 녹아 있다. 각 블록은 기본적으로 약 113m x 113m의 정사각형 형태지만 모서리는 사선으로 잘려 있다. 이를 ‘차플란(chaflán, 비스듬한 코너)’이라고 부르는데, 이 덕분에 교차로가 넓어지고, 시야가 트이며, 차량 회전이 쉬워진다.
이 구조는 도시 내부의 통풍과 채광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당시 전염병이 빈번했던 유럽 도시에서는 빛과 공기의 흐름이 곧 시민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였다. 세르다는 빽빽한 중세 도시의 폐쇄성과 비위생적인 구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서 도시 블록 사이의 도로를 넓게 만들고, 도심 내에 녹지 공간을 배치했으며, 모든 시민이 균등하게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도시계획이 만든 아름다움
오늘날 우리는 이 격자 구조를 항공사진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드론이나 위성 촬영으로 내려다본 바르셀로나는 질서, 반복, 리듬이라는 개념으로 읽힌다. 단순히 기능적인 도시를 넘어서, 하나의 조형물처럼 느껴지는 도시의 풍경이 완성된 것이다.
이러한 미학은 현대 도시계획에도 영향을 주었다. 교통 정체를 줄이고, 공공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며, 시민의 보행과 차량 이동을 균형 있게 고려한 바르셀로나의 구조는 지금도 세계 여러 도시가 참고하고 있는 모델이다.
건축물 역시 이 질서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에이삼플레 지구에는 가우디의 대표작인 카사 밀라(Casa Milà),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같은 건축물이 각 구획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도시의 구조와 건축의 개성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부각시키는 독특한 조화를 보여준다.
신구 도시의 공존
바리 고티코(고딕 지구). 픽사베이 이미지
흥미로운 건, 바르셀로나 전체가 이런 격자구조로 되어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도심 중심에는 여전히 고대 로마의 흔적과, 중세 시대의 골목들이 남아 있다. 고딕 지구(바리오 고티코, Barri Gòtic) 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에이삼플레의 질서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이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하나의 도시 안에서 두 가지 시간, 두 가지 도시계획 철학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중세의 미로 같은 거리와, 근대의 정연한 격자형 구조가 맞닿아 있는 풍경은 단순한 대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도시가 살아 움직이며 진화해온 기록이고, 시대마다 달랐던 인간의 삶과 가치관이 도시 위에 새겨진 모습이다.
네모 속에 담긴 도시의 미래
바르셀로나는 지금도 살아 있는 도시다. 관광지로 유명한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 자체가 하나의 설계된 풍경으로 존재한다. 격자형 구조는 효율과 기능성, 그리고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 동시에 담아낸 보기 드문 사례다.
오늘날에도 바르셀로나의 도시계획은 교통체계, 도시 확장, 환경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고되고 있다. 네모난 도시 바르셀로나는 단순히 보기 좋은 도심이 아니라, 한 도시가 어떻게 사람과 환경,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