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틱 3국 지도
By Ian Macky, PAT Atla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서론
‘발틱 3국’이라는 표현은 에스토니아(Estonia),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Lithuania)라는 세 나라를 묶어 부르는 지역적 명칭이다. 이들은 모두 발트해 연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유럽과 동유럽,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의 경계선 위에 놓여 있다.
지도를 펼쳐 보면 세 나라는 유럽에서도 비교적 작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이 지역이 유럽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발틱 3국은 오랜 세월 동안 교역의 통로였고, 제국의 완충지대였으며, 독립과 상실이 반복되어 온 공간이다.
바다와 길 위에서 형성된 도시들
발틱 3국의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발트해는 단순한 해역이 아니라 중세 유럽의 주요 상업로 중 하나였고, 이 해역을 통해 독일, 스칸디나비아, 동유럽이 이어졌다. 탈린(Tallinn), 리가(Riga), 빌뉴스(Vilnius) 같은 주요 도시는 이 교역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이 도시들의 구시가지는 중세 상업 도시의 흔적을 분명히 보여준다. 성벽, 길드홀, 좁은 골목과 광장은 관광 자원이기 이전에 이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발틱 3국은 화려한 왕궁이나 거대한 대성당보다는 실용적이고 단단한 도시 구조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낸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세 나라
발틱 3국은 종종 하나의 문화권처럼 묶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차이는 분명하다.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파노라마 뷰
By acediscovery – Own work, CC BY 4.0, wikimedia commons.
에스토니아는 행정과 기술 분야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발틱 국가다. 전자 정부, 디지털 신분증, 온라인 행정 체계는 단순한 편의 장치를 넘어 국가 운영 방식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행정 절차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이 구조는, 작은 국가가 가진 물리적 한계를 제도와 기술로 보완하려는 선택의 결과다.
문화적 뿌리는 발트보다는 핀우그리아 계통에 가깝다. 언어 역시 라트비아어나 리투아니아어와는 계통이 다르며, 핀란드와의 역사적·문화적 친연성이 뚜렷하다. 이러한 정체성은 에스토니아가 스스로를 동유럽보다는 북유럽에 더 가깝게 인식하는 배경이 된다.
수도 탈린(Tallinn)은 중세 상업 도시의 구조와 현대적 디지털 인프라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성벽과 구시가지는 과거를 보여주지만, 도시의 운영 방식은 철저히 현재를 향해 있다. 에스토니아는 과거의 지배 경험과 체제 전환의 상처를, 기술과 제도를 통해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택한 국가로 볼 수 있다.
<라트비아>

라트비아 성 페테르 교회에서 바라본 리가 전경
By Diego Delso,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라트비아는 지리적으로 발틱 3국의 정확한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러한 위치는 역사적으로도 이 나라를 교차점으로 만들었다. 여러 세력이 오가며 흔적을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수도 리가(Riga)는 중세 이후 발트해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도시 곳곳에는 독일 기사단과 한자동맹의 유산이 남아 있으며, 그 위에 소련 시기의 건축과 도시 계획이 겹쳐져 있다. 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공존은 라트비아가 경험해 온 복합적인 역사 자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라트비아의 정체성은 단일한 서사보다는, 다양한 지배와 교류의 층위 위에서 형성되었다.
세 나라 가운데 라트비아는 가장 ‘발틱적’인 균형을 보여준다. 언어와 문화, 역사적 경험 모두에서 극단적인 치우침보다는 중간 지대를 유지해 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라트비아는 발틱 3국을 하나의 지역으로 이해할 때 기준점처럼 작용하는 국가다.
<리투아니아>

게디미나스 탑에서 바라본 리투아니아 빌뉴스의 현대적 스카이라인
By Diliff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리투아니아는 발틱 3국 가운데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졌던 나라다. 중세 이후 폴란드와의 연합 시기, 이 국가는 동유럽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존재했다. 당시의 경험은 오늘날에도 리투아니아의 역사 인식과 국가 정체성에 깊게 남아 있다.
세 나라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발트와 동유럽의 경계에 서 있다. 이러한 위치는 문화와 정치, 종교적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발틱적 요소와 동유럽적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며, 단일한 정체성보다는 층위가 겹친 구조를 이룬다.
수도 빌뉴스(Vilnius)는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도시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흔적이 도시 구조 안에 남아 있으며, 이는 리투아니아가 단순한 ‘소국’이 아니라 동유럽 역사 속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보여준다. 리투아니아는 과거의 기억을 비교적 분명하게 유지한 채 현재를 구성하는 국가다.
소련의 기억과 독립 이후의 선택
발틱 3국을 이해할 때 소련 시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세 나라는 모두 강제로 편입되었고, 언어와 문화, 정치 구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에 대한 열망도 강하게 유지되었다. 이 지역에서 독립은 단순한 정치 사건이 아니라 정체성 회복의 과정이었다.
독립 이후 세 나라가 선택한 길은 분명했다. 유럽과의 재연결, 서방 제도와의 접속, 그리고 안보와 경제의 다각화였다. 이러한 선택은 오늘날 발틱 3국을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국가들’로 만들었다.
발틱 3국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
발틱 3국은 화려함보다 밀도가 높은 지역이다. 크지 않은 영토 안에 중세, 제국, 냉전, 디지털 시대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곳을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정치와 국제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핵심적인 질문이 있다.
작은 국가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역사는 어떻게 현재의 선택을 규정하는가.
결론
발틱 3국은 유럽의 변방이 아니다. 이곳은 유럽이 반복해 온 갈등과 회복, 단절과 연결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남아 있는 지역이다. 조용하지만 가볍지 않은 이 공간은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