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를 상징하는 종목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거리에도 어떤 고대의 기준이나 과학적 계산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42.195km라는 숫자는 전통이나 과학의 산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연과 상황이 만든 결과에 가깝다.
마라톤의 거리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마라톤이라는 종목은 고대 그리스의 전설, 즉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달려가 승전을 전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전설에는 정확한 거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기 마라톤 대회들은 대체로 40km 전후였고, 개최 도시의 지형과 코스 여건에 따라 거리가 달랐다.
-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약 40km
- 1900년 파리 올림픽: 약 40.26km
-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약 40km
즉, 초창기 마라톤은 ‘대략적인 거리 종목’에 가까웠다.
42.195km의 탄생, 1908년 런던 올림픽

190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의 출발 지점(윈저성 앞)
By Photographer of IOC,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오늘날의 마라톤 거리를 결정지은 계기는 1908년 런던 올림픽이다. 이 대회에서 마라톤 코스는 다음과 같이 정해졌다.
- 출발 지점: 마라톤의 출발선은 왕실 자녀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윈저성 앞에 설치되었다.
- 도착 지점: 원래 결승점은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의 입구였지만, 왕실 가족이 결승 장면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국왕의 로열 박스 바로 앞까지 트랙을 연장하면서 385야드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출발과 도착을 조정하다 보니 코스 길이는 26마일 385야드가 되었다. 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바로 42.195km다.
이 거리는 애초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기준도, 인체 한계를 고려한 숫자도 아니었다. 왕실 의전과 경기장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우연한 기준이 공식이 되기까지
흥미로운 점은 1908년 이후에도 마라톤 거리가 곧바로 하나로 통일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동안 마라톤 거리는 대회마다 여전히 차이가 있었지만, 42.195km 코스가 주요 대회를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채택되면서 점차 관행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전환점은 1921년이었다. 국제육상연맹은 그해 마라톤의 공식 거리를 42.195km로 규정했고, 런던 올림픽에서 비롯된 이 거리는 마침내 사실상의 기준에서 공식 표준으로 확정되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콜롱브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42.195km 마라톤 출발 장면
By Source BNF-Gallica, auteur,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마무리하며
마라톤의 거리는 인간의 한계를 계산해 정해진 수치가 아니다. 42.195km라는 기준은 우연한 선택에서 출발해 반복과 관행을 거치며 전통으로 굳어졌다. 오늘날 인간 의지의 상징이 된 이 거리는, 역설적으로 왕실의 동선과 경기장 배치라는 현실적 사정이 남긴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