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라고 하면 흔히 자본주의 체제의 변혁이나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같은 거대한 정치적 문제를 떠올린다. 그런데 미국 정치사에는 ‘하수도 사회주의(Sewer Socialism)’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린 정치 전통이 있었다. 실제로 하수도와 관련이 있는 정치 운동이었다.
밀워키에서 시작된 실용적 사회주의
‘하수도 사회주의’는 20세기 전반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Milwaukee)를 중심으로 성장한 사회주의자들의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지방정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지방정부에 진출하고, 공공서비스를 확대해 노동자를 비롯한 시민들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려 했다.
상하수도와 공중위생 같은 도시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공원과 교육을 확충하는 한편, 부패한 지방정치를 개혁하고 효율적인 행정을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수도와 전력 등 주요 공공서비스의 공공 소유도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즉, 사회주의적 이상을 일상생활과 밀접한 도시 행정을 통해 실현하려 했던 것이다.
‘하수도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유래
‘하수도 사회주의’는 처음부터 이들이 자신들의 정치 노선을 내세우기 위해 만든 이름은 아니었다. 이 표현은 미국 사회당 내부에서 밀워키 사회주의자들의 실용주의적 노선을 비판하거나 비꼬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1932년 밀워키에서 열린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자 모리스 힐퀴트(Morris Hillquit)가 대니얼 호언을 비롯한 밀워키 사회주의자들의 지방행정 중심 노선을 비판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미국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어디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지를 놓고 노선 차이가 있었다. 밀워키의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인 구호보다 선거에서 승리하고 지방정부를 운영하면서 구체적인 개혁을 이루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하수도는 바로 그런 정치의 상징이었다.
오수를 제대로 처리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은 화려한 정치적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도시 주민이라면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도로와 공원, 쓰레기 처리, 수도와 같은 시설 역시 개인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제공해야 한다. 처음에는 조롱의 뜻이 담겼던 ‘하수도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오히려 이들의 정치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표현으로 남게 된 이유다.
밀워키 사회주의의 기반을 만든 빅터 버거
밀워키 사회주의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 빅터 버거(Victor Berger)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버거는 밀워키에서 언론과 노동운동을 통해 사회주의 세력을 조직했다. 특히 독일계 이민자가 많았던 밀워키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노동조합과 사회주의 정치세력을 결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초의 사회주의자 연방 하원의원” 빅터 L. 버거
By Berger Campaig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버거가 추구한 것은 폭력혁명보다는 선거와 제도적 개혁을 통한 점진적인 변화였다. 그는 지방정부를 통해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고 노동자의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
1910년 버거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세 명의 사회주의자 시장
같은 해인 1910년 에밀 자이델(Emil Seidel)이 밀워키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밀워키 최초의 사회주의자 시장이었다.
자이델의 뒤를 이어 사회주의 정치의 대표적인 인물로 등장한 사람이 대니얼 호언(Daniel Hoan)이다. 호언은 1916년 시장에 당선되어 1940년까지 무려 24년 동안 밀워키를 이끌었다.
호언 행정부는 도시 행정의 효율성과 청렴성을 강조하고 공공시설과 사회서비스를 개선했다. 특히 사회주의자들은 민간 기업이 독점하던 주요 공공서비스를 지방정부가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밀워키 시장 프랭크 자이들러(Frank Zeidler), 1949년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1948년에는 프랭크 자이들러(Frank Zeidler)가 시장에 당선되어 1960년까지 재임했다. 이로써 밀워키는 미국의 대도시 가운데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오랫동안 지방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대표적인 도시가 되었다.
하수도 사회주의의 쇠퇴
그러나 이 시기 밀워키의 사회주의 세력은 냉전과 매카시즘에 따른 이념적 압박, 중산층의 교외 이주에 따른 지지 기반의 변화, 그리고 이들이 내세웠던 여러 개혁 의제가 주류 정치에 흡수되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었다.
결국 1960년 자이들러가 시장직에서 물러난 뒤 밀워키에서는 더 이상 사회주의자 시장이 나오지 않았다. 사회주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도 점차 약해지면서 밀워키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하수도 사회주의’의 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하수도를 넘어선 사회주의 개혁
‘하수도 사회주의’라는 이름 때문에 이들의 정책이 상하수도와 공중위생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정책의 범위는 훨씬 넓었다. 공원과 교육, 노동환경, 공공시설과 사회서비스를 개선하고 지방정부의 부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또한 수도와 전력 같은 공공서비스를 공공의 통제 아래 두려 했다.
따라서 여기에서 ‘하수도’는 이들의 정책을 문자 그대로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시민의 일상생활을 개선하는 공공서비스와 도시 행정을 중시했던 정치적 성격을 상징하는 표현에 가깝다.
이러한 실용적인 정책과 행정 성과는 노동조합과 이민자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정치조직과 함께 밀워키 사회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시민들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일상에서 구현된 사회주의
‘하수도 사회주의’는 처음에는 그다지 칭찬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회주의자가 세상을 바꾸겠다면서 고작 하수도와 공원, 수도 같은 문제에 매달린다는 조롱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용어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밀워키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이상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시민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지, 오수가 제대로 처리되는지, 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지방정부가 부패하지 않고 제대로 작동하는지 역시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거대한 이념도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조금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하수도 사회주의’라는 이름이 미국 정치사에서 하나의 독특한 정치 전통을 설명하는 용어로 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