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를 맞아 캐럴을 연주하는 구세군 브라스 밴드 (출처: 픽사베이)
구세군은 기독교 역사 안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다. 교회이면서 동시에 군대의 형식을 띠고 있고, 예배당보다 거리와 현장을 더 자주 무대로 삼아왔다. 설교와 예배가 신앙의 중심이라면, 구세군에게 실천은 그 신앙이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탄생의 배경: 거리에서 시작된 신앙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은 19세기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서 태어났다. 1878년 런던에서 전직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가 설립했다.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당시의 도시는 빈곤, 알코올 중독, 범죄, 노숙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지만, 교회는 그 현실에 충분히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부스는 교회 안에서 기다리는 대신 거리로 나섰다. 설교는 예배당이 아니라 길 위에서 이루어졌고, 신앙의 대상은 ‘올바른 교리’보다 ‘지금 고통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앙을 조용한 내면의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사회 한복판에서 드러나야 할 힘으로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선택된 표현이 바로 ‘군대’였다. 신앙을 전쟁에 비유하고, 죄와 빈곤, 절망을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 이 발상은 당시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구세군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단체의 성격을 설명하는 문장이자 선언이 되었다.
‘구세군’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

구세군의 기(旗)
By The Salvation Army,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구세군이라는 명칭은 자연스럽게 붙은 별명이 아니다. 구원(Salvation)과 군대(Army)라는 두 단어는 의도적으로 결합되었다. 이는 신앙을 개인적 구원의 문제로만 두지 않고, 사회 전체의 회복을 향한 집단적 행동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이 이름에서 중요한 것은 ‘군대’라는 단어가 가진 상징성이다. 무력이나 강압이 아니라, 조직·규율·지속성을 의미한다. 즉, 구세군은 신앙이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행동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름 자체가 곧 방향 설정이었다.
군대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군대

구세군 브리게디어(준장)의 계급 휘장
By Rohanmcmaster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구세군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군대식 조직 구조다. 장군, 장교, 병사라는 호칭과 분명한 직급 체계가 존재하고, 깃발과 훈장, 제복도 있다. 그러나 이는 외형적 연출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누구나 같은 규율 안에서 움직이게 하기 위한 구조다.
언어 또한 군사적이다. 전도는 ‘전선’으로, 신앙 활동은 ‘사역’으로, 헌금은 ‘탄환을 쏜다’는 표현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군대는 무기를 들지 않는다. 대신 식사를 제공하고, 잠자리를 마련하며, 돌봄과 상담으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싸움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짓누르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제복이라는 시각적 언어

호주 남부 관구 훈련대학에 있는 구세군 장군 에바 버로우즈(Eva Burrows)
By Salvokat – Own wor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구세군을 떠올릴 때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제복이다. 이 제복은 장식이나 권위의 상징이 아니다. 거리에서 활동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야 했고, 설명 없이도 역할이 전달되어야 했다.
그래서 구세군의 제복은 오랜 시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개인의 취향이나 신분은 옷 뒤로 물러나고, ‘지금 이 자리에 나온 사람’이라는 정체성만 남는다. 제복은 말보다 먼저 신뢰를 전달하는 장치였고, 구세군이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다.
복지는 부차적인 일이 아니다
구세군에게 사회복지는 신앙의 결과가 아니라 핵심이다. 노숙인을 위한 쉼터, 무료 급식, 재난 구호, 중독 회복 프로그램은 자선을 넘어선 신앙의 표현이다. “영혼의 구원은 삶의 회복 없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이 모든 활동의 바탕에 놓여 있다.
연말마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자선냄비’ 역시 이 철학의 연장선이다. 종을 울리며 모금을 하는 이 장면은 구세군이 여전히 교회 담장 안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구세군은 언제 시작되었나

제84주년 구세군 자선냄비 시종식 축사(한국 구세군 박만희 사령관, 2012년)
By Korea.net,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구세군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1908년 10월, 영국인 구세군 사관 로버트 호가드(Robert Hoggard)와 일행이 서대문 평동에 본영(서울제일영)을 설치하면서 한국 구세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는 개신교 선교가 본격화되던 시기로, 구세군 역시 군대식 조직과 실천 중심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구세군은 구호와 복지 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오늘날에도 한국 구세군은 예배와 함께 노숙인 보호, 무료급식, 재난 대응, 사회적 약자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왜 구세군은 여전히 특별한가
구세군은 교리를 앞세우기보다 행동으로 신앙을 증명해 왔다. 군대라는 상징은 강압이 아니라 헌신을 뜻했고, 제복은 권위가 아니라 책임을 드러내는 표식이었다. 그래서 구세군은 종종 ‘설명되는 종교’가 아니라 ‘목격되는 종교’로 기억된다.
신앙이 무엇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라고 할 때, 구세군은 그 질문에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답해온 조직이다. 이름과 제복, 그리고 거리에서의 실천까지.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 구세군이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