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편리함 뒤에 숨은 위험
플라스틱은 현대 산업과 일상에 깊이 스며든 소재다. 가볍고 튼튼하며 저렴해 식품 포장부터 전자제품, 의류,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인다. 그러나 이 장점들은 동시에 심각한 환경 위기를 만든다.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에 수백 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과 유해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8백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로 유입된다. 해양 속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을 질식시키거나 몸에 얽히게 해 치명적인 상해를 입힌다. 크기 5mm 이하의 미세플라스틱은 플랑크톤부터 어류, 조개류까지 다양한 생물에 섭취되고, 최종적으로 인간 식탁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플라스틱 표면에 흡착된 중금속이나 유기오염물질도 함께 인체로 들어올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약 9%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소각되는데, 매립 시 토양·지하수 오염이, 소각 시 온실가스와 유해가스 배출이 뒤따른다.
2016년 일본에서의 발견 – Ideonella sakaiensis
2016년, 일본 교토공과섬유대학과 게이오대학 공동 연구팀은 재활용 공장 인근에서 수거한 PET 플라스틱 병 표면에서 특이한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이 박테리아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를 ‘먹고’ 있었다.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죽은 유기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지만, Ideonella sakaiensis는 PET를 분해하는 특수 효소, PETase를 분비했다. PETase는 PET의 에스터 결합을 절단해 테레프탈산(terephthalic acid)과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이라는 단량체를 만든다. 이 단량체는 다시 박테리아 대사과정에서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PETase의 의미와 한계
PET는 강한 에스터 결합 덕분에 내구성이 뛰어나지만, 그만큼 자연 분해가 어렵다. PETase는 이런 구조를 절단할 수 있는 활성 부위를 가지고 있어, PET를 미생물이 이용 가능한 작은 분자로 만든다. 그러나 PETase는 PET에만 작용하며,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등 다른 주요 플라스틱은 분해하지 못한다.
이 한계 때문에 PETase는 플라스틱 문제의 전면적 해결책이라기보다, PET 재활용 효율을 높이는 보조 기술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유전공학과 효소 최적화 시도
PETase 발견 이후, 세계 각국 연구팀은 효율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PETase의 아미노산 서열을 변형해 반응 속도, 내열성, 내산성을 개선하거나, E. coli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에 PETase 유전자를 삽입해 대량 생산하는 방법이 연구 중이다.
또한 PETase와 다른 효소를 결합해, 분해된 단량체를 곧바로 재중합 원료로 전환하는 통합 공정도 실험되고 있다. 이를 통해 ‘폐 PET → 원료 → 새 PET’로 이어지는 완전한 재활용 루프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안전성과 적용 범위
효소나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자연에 직접 방출하는 것은 생태계 교란과 예기치 못한 확산 위험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 연구는 주로 폐쇄된 환경(재활용 공장, 폐수 처리 시설 등)에서 PETase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향후에는 미세플라스틱 제거 장치, 해양 부유 플랫폼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이 있지만, 산업적 규모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처리 속도, 비용, 안전성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기술과 소비 변화의 병행
PETase와 같은 첨단 생물학 기술은 플라스틱 오염 완화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다회용 용기 사용, 불필요한 포장 최소화, 생분해성 소재 확대 같은 실천이 필수적이다. 정책적으로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강화, 재활용률 목표 상향, 특정 플라스틱 사용 제한이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