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기를 든 소녀, 픽사베이 이미지
서론
2025년 4월, 팔레스타인은 다시 국제사회 앞에 섰다. 유엔총회에서 정회원국 승인을 요구했고,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를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팔레스타인은 이미 많은 나라로부터 독립국으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유엔 정회원국 지위는 얻지 못한 채 멈춰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주요 국가의 반대 속에서 지금도 ‘국가가 아닌 국가’라는 모순된 지위에 놓여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 논의는 단순히 외교적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이 지역은 지난 70여 년 동안 독립을 선언했지만 독립하지 못했고, 국가처럼 운영되지만 국가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국가’가 아닌가. 그 이유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 속에 숨어 있다.
국제정치의 냉혹한 계산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약 56%를 유대인 국가로, 약 43%를 아랍국가로, 예루살렘은 국제관리지역으로 지정하는 분할안을 통과시켰다(당시 유대인 소유토지는 전체의 약 6%에 불과). 유대인 측은 이를 수용했고, 아랍 측은 거부했다.
그 결과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주변 아랍국가들과 전쟁이 벌어졌다. 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은 국가로서의 구조를 갖추기도 전에 붕괴했고,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은 난민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의 독립 노력은 국제정치의 이해관계에 막혔다. 냉전기에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확고히 지지했고, 소련과 일부 아랍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했지만 힘의 균형을 바꾸지는 못했다. 특히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수차례 팔레스타인 관련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가라는 지위는 국제법의 논리보다 국제정치의 힘에 따라 결정되었다.
내부 분열이라는 자가당착
팔레스타인은 하나의 독립국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두 개의 권력체가 존재한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파타(Fatah)와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Hamas)는 정치이념, 통치방식, 외교전략에서 크게 다르다. 2006년 총선 이후 시작된 이 분열은 지금까지도 봉합되지 않고 있다.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명확한 주권행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단일한 행정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국제사회 역시 “누구를 팔레스타인의 대표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했다. 이 구조적 불안정은 독립국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아랍권의 전략적 후퇴
과거 아랍세계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공동의 대의로 삼았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중동 각국의 외교전략은 실용주의로 이동했다. 2020년, 아랍에미리트(UAE)가 이스라엘과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바레인과 모로코도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수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중동외교의 중심이 아니다. 아랍국가들은 안보와 경제를 우선시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는 점점 의제에서 밀려나는 상황에 놓였다. 국제외교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면서 팔레스타인의 외교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최근 변화: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
2023년 이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전 세계의 여론을 크게 뒤흔들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유럽 내 몇몇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유엔에서도 팔레스타인의 정회원국 승인을 논의하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민주당 내 진보성향 정치인들과 젊은 세대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과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는 미국의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원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정부는 이스라엘을 핵심 동맹국으로 간주하며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정식 국가승인을 막고 있다.
국가로 인정받는다는 것
국가라는 지위는 단지 이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법상 ‘국가’가 되면 외교권, 조약 체결권, 국제형사재판소 접근권 등 실질적 권한이 부여된다. 동시에 그에 따른 법적 책임도 수반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복잡하다. 외교적으로는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일부 갖췄지만 실질적으로는 단일정부 체제, 영토통제력, 자주적 안보능력 등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로 인정받는 것’과 ‘국가로 기능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있다.
결론
2025년 현재, 팔레스타인은 여전히 분쟁의 한복판에 있다. 때로는 희망이 생기고, 때로는 또 하나의 거부권 앞에 멈춘다. 문제는 단지 외교적 승인 여부가 아니라 그동안 반복된 실패의 구조를 얼마나 넘어설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왜 아직도 국가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은 단 하나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여온 수많은 정치적 선택과 외교적 침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