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규빗 자
By Uriah Welcome,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인류와 측정의 시작
문명의 탄생과 함께 사람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사물을 정리하기 위해 단위를 만들어 표준화하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인체의 일부나 씨앗, 돌이 기준이 되었고, 고대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000년 무렵 큐빗(cubit)이라는 길이 단위를 사용했다. 큐빗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의 거리였으며, 왕실은 약 45.7cm에 해당하는 ‘규빗 자’를 만들어 표준으로 삼았다.
인도 펀자브의 하라파 문명은 기원전 1700년경 정교한 저울과 단위를 고안했으며, ‘인더스 인치’는 오늘날의 약 1.32인치였다. 로마인들은 천 걸음을 1마일로 계산했고, 앵글로색슨인들은 보리 알갱이를 단위로 삼았다. 이는 지금도 3분의 1인치(약 8.5mm)로 표준화되어 영국식 신발 치수 체계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단위들이 뒤섞여, 18세기에 이르면 전 세계에 800가지가 넘는 측정 단위가 혼재하게 되었다.
‘제국 단위’의 등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영국은 1824년 「도량형법(Weights and Measures Act)」을 제정해 새로운 표준 체계를 확립했다. ‘제국 단위(imperial system)’는 로마와 앵글로색슨 전통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제국 갤런(Imperial gallon)은 섭씨 16.7도에서 물 10파운드의 무게로 정의되었다. 이는 국제적 교역과 산업화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동시에 세계 각지에 복잡한 단위 체계를 남기기도 했다.
미터법의 혁명
이와 달리 프랑스는 대혁명의 격변 속에서 10진법에 기초한 새로운 측정 체계, 즉 미터법(Metric system)을 마련했다. 새로운 단위 ‘미터(metre)’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거리의 1천만 분의 1로 정의되었고, 이는 자연을 기준으로 삼은 최초의 보편적 체계라는 의미를 지녔다.
나폴레옹 시기에는 비록 다른 단위 사용이 병행되었으나, 1840년에 다시 미터법이 공식 제도로 자리 잡았고,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미터법의 변화
처음에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했던 미터 정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19세기에는 백금-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국제 원기가 길이의 기준이 되었고, 20세기 중반에는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파장을 활용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마침내 1983년에는 미터가 진공 속에서 빛이 1/299,792,458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로 정의되면서, 미터법은 불변의 자연 상수를 기준으로 하는 완전한 형태에 도달했다. 이렇게 미터법은 단순한 측정 단위를 넘어, 과학이 우주적 법칙을 인간의 삶에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아직도 제국 단위를 쓰는 나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나라가 미터법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미국은 1866년에 미터법을 합법화하고 의회에서 이를 우선적 단위로 선언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국민은 야드·파운드계를 고수한다. 라이베리아 역시 미국의 영향을 받아 제국 단위를 이어받았으나, 최근에는 전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미얀마는 마일과 갤런 같은 제국 단위와 ‘비스(viss)’ 같은 고유의 무게 단위를 혼합해 사용하며, 영국은 1965년부터 미터법 도입을 추진했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스톤(stone)’이나 ‘피트(feet)’ 같은 단위가 쓰인다.
전통을 강조하는 단위들
오늘날에도 일부 특수한 맥락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단위들이 남아 있다. 경마에서는 약 201미터의 펄롱(furlong)이 거리 측정에 쓰이고, 리그(league)는 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거리로 환산되어 약 3마일로 계산된다.
군대에서는 킬로미터를 ‘클릭(klick)’이라 부르는데, 총기의 가스 조절기를 1,000미터마다 리셋할 때 나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농업에서는 약 5.029미터에 해당하는 로드(rod)가 사용되고, 항해에서는 위도 1분에 해당하는 거리를 나타내는 해리(nautical mile, 1,852m)가 국제적으로 통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