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할수록 배터리 사용 시간이 눈에 띄게 짧아진다. 처음에는 하루를 버티던 기기가 어느 순간 반나절도 채 가지 못한다. 이 현상은 단순한 체감이 아니라 리튬이온 배터리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구조 변화의 결과다.
리튬이온의 이동
리튬이온 배터리는 리튬 이온이 두 전극 사이를 오가는 과정에서 작동한다. 충전할 때는 리튬 이온이 리튬 금속 산화물 전극에서 빠져나와 흑연 전극으로 이동한다. 방전할 때는 리튬 이온이 흑연 전극에서 나와 금속 산화물 전극으로 돌아간다.

방전(왼쪽)과 충전(오른쪽) 시 리튬이온 배터리 셀의 구조와 작동 원리 개념도
By Walter Daviso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왼쪽, 방전 과정: 흑연 전극(LiC₆)에서 리튬 이온(Li⁺)이 빠져나와
금속 산화물 전극(MO₂/LiMO₂)으로 이동하고, 전자는 외부 회로를
통해 흐르며 전력을 공급한다.
오른쪽, 충전 과정: 외부 전원에 의해 전자가 반대로 이동하고,
리튬 이온은 금속 산화물 전극에서 흑연 전극으로 돌아가 다시 저장된다.]
이 왕복 운동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결정 구조 안으로 이온이 드나드는 과정이다. 전극 물질은 반복적으로 팽창하고 수축하며 미세한 변화를 겪는다. 문제는 이 변화가 완전히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조의 피로
충·방전이 반복되면 음극의 결정 구조가 조금씩 변형된다. 일부 리튬 이온은 더 이상 전극 구조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묶인다. 이는 곧 전기화학 반응에 참여할 수 있는 리튬 이온의 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사용 가능한 리튬이 줄어들수록 배터리의 최대 저장 용량은 감소한다. 우리는 이를 배터리 수명이 줄었다고 표현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반응 가능한 이온의 총량이 줄어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막(SEI, 고체전해질계면)

리튬-실리콘 배터리의 실리콘 음극(anode) 위에 고체전해질계면(SEI) 층이 형성되는 과정
By Pieceofmetalwork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왼쪽은 리튬 이온(Li⁺)이 SEI 층을 통과해 음극 내부로 삽입되는
정상 저장 과정(intercalation)을 나타낸다.
오른쪽은 리튬 이온과 전자가 전해질(electrolyte)과 반응해
음극 표면에 SEI 층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배터리 내부에서는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충전 초기에 형성되는 고체전해질계면, 즉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 층이 점점 두꺼워진다. 이 막은 전극을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리튬 이온을 일부 소모한다.
SEI가 두꺼워질수록 전기저항은 증가하고, 충·방전 효율은 낮아진다.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충전 속도의 변화와 사용 시간의 단축이다.
온도의 영향
온도는 이 모든 과정을 가속하거나 늦추는 변수다. 높은 온도에서는 전해질 분해와 전극 열화 반응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 흑연 구조가 손상되고, 부반응이 늘어나며, 배터리 내부의 화학적 불안정성은 커진다.
섭씨 35도 이상의 환경이 반복되면 구조 변화는 더 빨리 누적된다. 그 결과 용량 저하는 가속되고, 수명은 눈에 띄게 짧아진다.
용량 감소의 본질
배터리의 노화는 갑작스러운 고장이 아니라 점진적인 화학 변화의 축적이다. 매번의 충전과 방전이 아주 작은 구조 변화를 남기고, 그 흔적이 시간이 흐르며 쌓인다.
우리가 체감하는 ‘배터리 빨리 닳음’은 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온과 구조의 문제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공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과정이며, 되돌릴 수 없는 재료의 피로가 만들어낸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