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란 무엇인가 ᅳ 시대마다 달라진 자유의 의미

들라크루와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1830), 루브르 박물관.

By Eugène Delacroix,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변화해 온 사상

오늘날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말은 혼란스러운 단어 가운데 하나다. 유럽에서 자유주의자는 대체로 개인의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고, 사회 변화에 개방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리버럴(liberal)’이라는 표현은 훨씬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보와 관용의 상징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친 복지 확대와 큰 정부를 의미하는 비판적 표현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자유주의라는 말이 이렇게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자유주의가 역사 속에서 계속 변화해 온 사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의 변하지 않는 핵심은 하나였다.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한다.”

하지만 시대마다 개인을 위협하는 권력이 달랐다. 처음에는 왕과 교회의 권력이었다. 이후에는 거대한 자본과 경제 권력이었다. 그리고 이 변화가 고전적 자유주의와 현대 자유주의를 갈라놓았다.

왕과 교회의 시대 ᅳ 고전적 자유주의의 탄생

자유주의는 17세기 유럽의 정치적·종교적 혼란 속에서 탄생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절대왕정과 종교 권위가 개인의 삶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왕은 신으로부터 권력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종교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했다.

그러나 긴 종교 전쟁과 사회 혼란을 경험한 철학자들은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통치자는 어떤 권리로 사람들을 지배하는가?”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이에 대해 혁명적인 답을 제시했다. 국가는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권력은 신이 아니라 국민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이 생각은 이후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개인은 더 이상 왕과 교회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독립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초기 자유주의, 즉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였다.

작은 정부와 자유 시장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강력한 국가였다. 그들에게 역사는 권력이 개인을 억압해 온 과정이었다. 따라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했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1776) 초판 표지

애덤 스미스, 『국부론』(1776) 초판 제목 페이지

By Adam Smit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이 정치적 생각은 경제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사회 전체도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시장을 지나치게 통제하지 말고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가 등장했다. 즉 초기 자유주의의 공식은 다음과 같았다.

   작은 정부 + 개인의 자유 + 자유 시장

오늘날 보수주의 경제 사상과 비슷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 시장이 만든 새로운 문제

그러나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유주의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와 마주했다. 국가 권력은 약해졌지만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다. 바로 거대한 기업과 자본이었다. 규제받지 않는 자유 시장은 엄청난 부를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심각한 빈부 격차도 만들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긴 시간 일했지만 가난했고, 산업 자본가들은 막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새로운 질문을 마주했다.

“국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가?”

만약 가난 때문에 교육받을 수 없고, 병이 들어도 치료받을 수 없고, 생존을 위해 불공정한 노동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자유로운 상태인가?

현대 자유주의의 등장 ᅳ 국가가 자유를 보호한다

이 질문 속에서 자유주의는 큰 변화를 겪었다. 과거 자유주의는 말했다. “개인을 보호하려면 국가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자유주의자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때로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국가는 시장의 불평등을 조정하고, 교육·복지·사회보장을 통해 모든 사람이 실제로 자유롭게 살아갈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 또는 현대 자유주의의 시작이었다. 1930년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한다. 국가는 더 이상 자유의 적만이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신자유주의  다시 시장으로

하지만 1970년대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 높은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은 큰 정부와 복지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였다.

로날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의 초상 병치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는 다시 고전적 자유주의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부 축소
  • 규제 완화
  • 자유 시장 확대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름에는 ‘자유주의’가 들어 있지만 현대 정치에서는 보수주의 경제 정책과 연결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자유주의라는 단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자유주의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힘에 맞서 온 사상.”

왕이 개인을 억압할 때 자유주의는 왕에 맞섰다. 국가가 지나치게 강할 때 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주장했다. 경제 권력이 개인을 압박할 때 자유주의는 국가 개입과 복지를 주장했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시대에 따라 모습이 달라졌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개인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이 바로 자유주의 300년 역사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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