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없는 민족, 쿠르드: 3천만 명의 망명자

사진: UnsplashLevi Meir Clancy

 

서론

2024년, 일본 사이타마현. 몇몇 거리에서는 ‘불법 체류자 추방’을 외치는 혐오 시위가 벌어졌다. 대상은 낯선 외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터키 출신 르드족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일본에 들어온 난민 신청자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쿠르드인은 지금까지 단 한 명뿐이며, 수천 명의 쿠르드족 신청자 대부분은 임시 체류 허가 상태로 남아 있다. 일본의 난민 인정률은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며,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치에 속한다.

이 작은 뉴스는 사실, 전 세계 쿠르드인의 현실을 조명하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하다. 그들은 왜 터키를 떠났고, 왜 일본까지 왔으며, 왜 지금도 환영받지 못하는가?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쿠르드족은 중동지역에 흩어져 사는 민족으로, 인구는 약 3천만~4천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고유한 언어인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다. 하지만 터키인, 아랍인, 페르시아인과는 언어와 문화, 생활방식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 살고 있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독립된 국가를 갖지 못했다. 이 때문에 종종 ‘세계 최대의 국가 없는 민족’이라 불린다.

독립의 기회는 왜 사라졌는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며, 중동 지역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지배 체제로 재편됐다. 당시 체결된 세브르 조약(1920)에는 쿠르디스탄 자치 또는 독립 가능성이 명시돼 있었지만 이후 터키 공화국 수립과 함께 로잔 조약(1923)이 체결되면서 해당 조항은 철회되었다. 이로써 쿠르드족은 국제적으로 민족자결의 기회를 잃었다. 그들은 네 개의 국가에 분할된 채, 각각 다른 정치 체제와 억압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각국에서의 현실

터키: 쿠르드족은 터키인이 아니다

터키 정부는 오랫동안 쿠르드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왔다. 쿠르드어 사용은 금지되었고, ‘산 속의 터키인’이라는 용어로 동화 정책이 추진됐다.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무장 조직이 바로 PKK(쿠르드노동자당)이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 내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벌였고, 터키 정부는 이를 강경 진압해왔다. 터키, 미국, 유럽연합은 PKK를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충돌로 수만 명이 사망했으며, 지금도 쿠르드계 주민은 정치적 감시와 차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라크: 학살에서 자치로

이라크에서는 1980년대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족을 반체제 세력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탄압을 벌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알안팔 작전(1988)**이다. 이 작전에서 쿠르드 민간인 수만 명이 살해되었고, 화학무기 사용도 이루어졌다.

걸프전 이후 미국의 군사 개입과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으로 쿠르드족은 북부 지역에서 실질적 자치를 이루게 되었고, 2005년에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헌법상 인정되었다.

2017년 독립 찬반 투표에서는 90% 이상의 찬성률이 나왔지만, 이라크 정부와 인접국, 국제사회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리아: 내전 속에서 만들어진 자치구

시리아 내전은 쿠르드족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 시리아 북동부에서는 로자바 자치지역이 등장했으며, 그 군사 조직인 YPG(인민수비대)는 미국 주도의 국제 동맹과 함께 IS 격퇴전의 핵심 동맹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터키는 YPG를 PKK와 연계된 조직으로 간주하며, 시리아 북부에 군을 파병하고 자치지역을 무력화하려 하고 있다.

이란: 침묵 속의 탄압

이란 내 쿠르드족 역시 쿠르드어 교육과 문화 표현이 제한되어 있고,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 2022년 이란 전역을 뒤흔든 ‘지나 아미니 사건’의 피해자도 쿠르드계 여성이었다. 이 사건은 쿠르드족의 저항과 억압의 역사를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

문화와 공동체: 끊어지지 않는 민족성

나라와 체제는 다르지만, 쿠르드족은 언어, 음악, 공동체 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 왔다.
대표적인 문화 요소는 봄의 새해 축제인 **노루즈(Nawroz)**이며, 이 날은 민족 단합의 상징이자 정치적 표현의 장이 되기도 한다.

쿠르드족 깃발의 노랑·빨강·초록은 저항과 정체성을 의미하며, 여성 전사의 이미지도 강렬하다. 시리아 북부에서는 여성 중심의 민병대가 구성되었고, 쿠르드 여성들은 군사뿐 아니라 사회 개혁의 중심에 서 있다.

국제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쿠르드족은 국제정치 속에서 종종 도움받는 동맹자이기도 하고, 외면당한 존재이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은 YPG를 동맹으로 삼았지만, 필요가 사라지자 철수했다. 터키와의 관계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도 쿠르드인 난민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독립 문제에서는 모두 회피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늘 자기 힘으로 자치를 지켜야 하는 민족으로 남는다.

마무리: 망명자이자 생존자

쿠르드족은 지구 어디에도 ‘자기 나라’가 없다. 이들은 일본의 거리에서도, 시리아의 들판에서도, 스웨덴의 망명자 숙소에서도, 국경 없는 생존을 이어간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정치의 경계에 있고, 언어는 지워지려 하며, 문화는 위협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살아간다. 국가 없이, 국경 너머에서, 민족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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