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노동
“직장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우발적 사고’는 드물다. 작업 환경과 절차는 이미 알려져 있으므로, 위험 요소를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으로 인한 피해가 예측 가능하다면, 사고는 예방될 수 있다.”
(리사 컬런, A Job to Die For)
사고란 통제 불가능한 불운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반복되는 죽음은 그런 개념과 거리가 멀다. 위험은 이미 파악되어 있고, 예방 조치도 가능하지만 실행되지 않는다. 이 반복되는 죽음을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연간 290만 명의 죽음
국제노동기구(ILO)는 해마다 약 2.93백만 명이 일과 관련된 이유로 사망한다고 보고한다. 이 가운데 약 33만 명은 추락, 끼임, 감전 등의 산업재해로, 나머지 260만 명은 직업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같은 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비치명적 산업재해는 약 3억 9,500만 건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매일 8,000명, 매분 5명이 일터에서 사망한다는 뜻이다. 전쟁보다도 많은 수치이며, 죽음이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직장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질병과 기후의 새로운 위험
ILO는 사망자의 89%가 직업성 질병에 의해 생명을 잃는다고 분석한다. 암,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이 대표적이며, 반복적인 유해노출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의료·돌봄 노동자는 감염병에, 장시간 운전자는 심혈관계 질환에, 서비스직 종사자는 정신건강 악화에 취약하다. 직업은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신체와 생명을 결정짓는 환경이 된다.
최근에는 기후 변화도 새로운 형태의 직업위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약 24억 명의 노동자가 연 1회 이상 과도한 열에 노출되며, 열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자만 해도 매년 19,000명 이상이다. 이제 ‘덥다’는 말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구조적 방임이라는 이름의 폭력
ILO는 이런 죽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예방 가능하다고 본다. 위험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기술과 장비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굴착 현장에서 토사를 가장자리까지 쌓아두고, 붕괴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예측 불가능한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예고된 위험을 방치한 결과는 더 이상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방임이다.
숫자가 아닌 현실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식의 체념은 이 문제를 가릴 수 없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누구의 책임 아래 죽음이 발생하는가이다. 일터는 생계를 위한 공간이지,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ILO는 경고한다. 노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을 앗아가고 있으며, 그 죽음의 대부분은 막을 수 있다고.
출처
- ILO. Almost 3 million people die each year due to work-related causes, 2023.
- Business Insider. Heat-related injuries among workers are on the rise, 2024
- Lisa Cullen, A Job to Die Fo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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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HA. Indoor Air Quality and Work-Related Illnesses, 미국 노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