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한 조각의 피자는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입맛과 취향, 그리고 삶의 방식까지 이어준다. 그러나 이 상징적인 음식이 처음부터 토마토소스와 치즈로 덮인 둥근 형태였던 것은 아니다. 그 뿌리는 고대의 납작빵(flat bread)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문명에서 태어난 납작빵
피자의 역사는 이집트의 제빵 기술에서 출발한다. 기원전 수천 년 전,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인들은 이미 발효빵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무덤 속에서는 오늘날의 피타(pita)나 난(nan)과 유사한 납작한 빵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집트인들은 이를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자 하루의 주식으로 삼았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의 피타빵
By Satdeep Gill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기술은 지중해를 따라 전해져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졌다. 그리스인들은 올리브 오일, 허브, 양파, 치즈를 올려 간단한 한 끼로 즐겼고, 로마인들은 ‘피신나(pisna)’라 불리는 납작빵 위에 마늘, 허브, 치즈를 얹었다. 이처럼 ‘빵 위에 재료를 올린 음식’은 당시 지중해 지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즉, 피자는 “빵 위의 세계”라는 조리 개념의 집약체로 탄생한 셈이다.
나폴리, 현대 피자의 고향
현대적인 피자의 진짜 출발점은 이탈리아 남부의 나폴리(Napoli)다. 18세기 후반, 나폴리는 활기찬 항구도시이자 노동자의 도시였다. 값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던 서민들에게, 길거리에서 파는 납작한 빵 위의 간단한 토핑은 완벽한 한 끼였다.
당시 토마토는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처음엔 독이 있다고 여겨져 귀족들은 멀리했다. 그러나 나폴리의 서민들은 토마토를 구워 납작빵 위에 얹어 먹기 시작했고, 이 조합이 피자의 원형이 되었다.
1830년,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나폴리를 여행하며 “빵 위에 올린 다채로운 요리”라며 피자를 기록했다. 이 시기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나폴리의 거리 문화와 서민 정신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피자 마르게리타의 탄생
프랑스 테익스(Theix) 의 피자-브레즈 (화덕피자 전문점)
By Mario56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피자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도약한 계기는 1889년, 나폴리 피자 장인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가 사보이 왕비 마르게리타(Margherita)를 위해 만든 한 판의 피자였다.
그는 이탈리아 삼색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피자를 완성했다. 빨강은 토마토소스, 흰색은 모차렐라 치즈, 초록은 바질잎. 왕비는 이 피자를 맛본 뒤 감탄했고, 그의 이름을 딴 ‘피자 마르게리타(Pizza Margherita)’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마르게리타는 ‘이탈리아의 피자’의 표준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나폴리식 피자의 정수를 상징한다. 밀가루, 물, 소금, 이스트만으로 반죽해 나무 화덕에서 짧고 강한 열로 구워낸 그 맛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진짜 도우(dought, 피자 반죽)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피자의 세계 여행
19세기 말, 수많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향했다. 그들의 짐 속엔 피자 반죽의 기술이 담겨 있었다. 뉴욕에서는 얇고 큰 도우 위에 치즈를 넉넉히 얹은 뉴욕 피자, 시카고에서는 깊은 팬에 치즈와 소스를 층층이 쌓은 딥디시 피자가 탄생했다.
시카고 피자 전문점 Giordano’s의 두꺼운 딥디시(Deep-dish) 스타일 피자
By Marit & Toomas Hinnosaar, CC BY 2.0, wikimedia commons.
피자는 곧 미국 대도시의 이민자 음식을 넘어, 대중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1950년대 이후 냉동 피자와 체인점이 등장하면서 피자는 ‘이탈리아의 맛’에서 ‘세계의 패스트푸드’로 변모했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세계 셰프들은 지역 재료와 전통을 반영해 한국식 불고기 피자, 일본식 마요콘 피자, 인도식 탄두리 피자 등 각 나라의 입맛을 담은 피자를 만들어냈다.
오늘의 피자, 그리고 그 본질
지금 우리는 피자를 얼마나 쉽게 주문하고, 얼마나 다양하게 즐기는가. 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빵 위에 삶을 올린다”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조리의 미학. 고대의 납작빵에서 나폴리의 화덕까지, 그리고 세계 각지의 오븐 속까지 — 피자는 시대와 문화를 넘어 가장 인간적인 음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