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탭에서 열기)
시리얼, 견과류, 씨앗 등 다양한 고식이섬유 식품들(www.formulatehealth.com)
By formulatehealth, CC BY 2.0, wikimedia commons.
식이섬유와 식욕 억제의 새로운 단서
식이섬유가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이섬유가 어떻게 식욕을 억제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게리 프로스트(Gary Frost) 연구팀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핵심은 장내 미생물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단쇄지방산(SCFA) 중 하나인 아세테이트(acetate)이다.
결장에서 생성되는 아세테이트
식이섬유는 위와 소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그대로 결장까지 도달한다. 결장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발효시키며 단쇄지방산(SCFA)을 만든다. 이 가운데 아세테이트는 가장 많이 생성되는 물질이다.
프로스트 연구팀은 아세테이트가 단순히 장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혈액을 타고 뇌까지 이동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실험쥐에게 발효성 식이섬유인 이눌린(inulin)을 먹였을 때 장 내용물에서 아세테이트 농도가 증가했다. 더 나아가 ^13C로 표지된 이눌린 실험에서는 결장에서 만들어진 아세테이트가 실제로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에 도달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시상하부는 에너지 균형과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 핵심 기관이다. 프로스트 연구팀은 결장에서 생성된 아세테이트가 시상하부에 도달하면 다음과 같은 신경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프로-오피오멜라노코르틴(POMC) 뉴런의 활성 증가는 식욕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며, AgRP 뉴런의 활성 억제는 식욕을 촉진하는 신호를 줄여 식욕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식이섬유는 단순히 포만감을 주는 물리적 효과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 발효 → 아세테이트 생성 → 뇌 전달 → 중추 신경 조절>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식욕을 감소시킬 수 있는 하나의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식이섬유가 체중 증가를 막는 이유
쥐실험에서 발효성 식이섬유를 먹인 그룹은 고지방 식단을 먹었음에도 체중 증가가 확연히 낮았다. 이는 아세테이트 증가가 단순한 장내 부산물이 아니라, 실제 섭취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호 분자임을 보여준다.
또한 아세테이트는 신경세포와 교세포(glia)의 대사 경로 ᅳ 예를 들어 글루타메이트·GABA 회로 ᅳ 에도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뇌 내 신호 조절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가 주는 의미
프로스트의 연구는 식이섬유가 체중 조절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분자적·신경생리학적 수준에서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가능성이 제시된다.
- 아세테이트 생성을 촉진하는 식이섬유 설계
- 아세테이트 기반 비만 치료 전략 개발
- 장내 미생물 조성을 조절해 장-뇌 축(gut–brain axis) 신호를 개선하는 전략
즉, 식이섬유는 단순한 영양 성분을 넘어, 장과 뇌를 연결해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한계와 앞으로의 질문
이 연구는 주로 동물 실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간에게서도 같은 경로가 강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아세테이트 외에도 프로피온산, 부티르산 등 다른 단쇄지방산의 역할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향후 연구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식이섬유가 뇌의 식욕 조절 시스템과 직접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준 연구라는 점에서 이 발견은 비만 연구의 방향성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기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