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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탄소란 무엇인가
‘탈탄소(decarbonization)’는 단순히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산업, 교통, 소비 전반에서 탄소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각국이 추진 중인 ‘넷제로(Net Zero)’ 목표의 핵심 전략이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140여 개 국가가 2050년 또는 그 이후를 목표로 탄소중립 선언을 한 상태이며, 유럽연합과 한국, 미국, 일본 등은 이를 법제화하고 국가전략에 포함시켰다.
탈탄소는 에너지 부문뿐 아니라 철강, 시멘트, 운송, 농업 등 고탄소 산업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탄소의 가격화가 핵심 도구로 등장하게 되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탄소 시장
탄소배출권 거래제(Emissions Trading System, ETS)는 정부가 배출 가능한 탄소 총량을 정해 기업에 할당하고, 남거나 부족한 만큼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구조는 ‘캡 앤 트레이드(Cap and Trade)’로 불리며, 배출권에 가격을 부여함으로써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경제적 수단이다.
유럽연합(EU)은 2005년부터 ETS를 시행해 왔으며,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탄소 시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시행되어 2023년 기준 약 7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도 2021년부터 국가 ETS를 시행해 현재는 세계 최대 배출국이면서, 가장 넓은 범위의 단일 탄소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ETS의 작동원리는 다음과 같다. 기업 A가 할당받은 탄소배출량을 초과하지 않으면 남는 배출권을 기업 B에게 판매할 수 있다. 반면 기업 B는 초과 배출에 대해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므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으면 비용 부담이 커진다.
CBAM: 탄소가 무역장벽이 되는 시대
EU는 2023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도입해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시작했다. 이는 EU ETS에 포함된 유럽 기업들이 비용을 지는 반면, 해외기업은 규제 없이 유럽에 수출하는 불공정을 막기 위해 탄생한 제도다. 2026년부터는 철강, 알루미늄, 비료, 시멘트, 전기 등 5개 품목에 대해 본격적인 부과가 시작될 예정이다.
CBAM은 사실상 ‘탄소무역장벽’으로 작동하면서 탄소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의 반발도 이어지고 있으며, 국제 무역 질서 자체가 탄소배출량에 따라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과 기업의 대응: 감축이 곧 경쟁력
탄소배출이 비용이 되는 구조 속에서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감축기술 개발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선언), ESG 경영, 저탄소공정 개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반도체기업은 공정별 전력사용의 재생가능성을 계산해 투자유치를 받고 있으며, 국내 철강사와 시멘트 업체는 탄소포집(CCUS) 기술이나 수소환원제철 기술 도입을 추진 중이다.
배출권 가격은 유럽에서 톤당 80~100유로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이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곧바로 손익에 영향을 주는 구조임을 의미한다. 기업에게 탄소는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재무 리스크’가 되었다.
기후 정의와 개발도상국의 시각
일부 개도국은 탄소 감축 의무가 역사적 책임을 무시한 구조라며 비판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산업혁명 이후 이미 다량의 탄소를 배출해왔고, 개도국은 아직 산업화 단계인데 똑같은 감축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있다.
이러한 논의는 기후 정의(climate justice) 개념으로 이어지며 국제협상에서는 재정지원, 기술이전, 감축 목표 차등화 등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특히 COP 회의(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매년 선진국의 기후기금 납부와 개발도상국 지원 방안이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