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지구라는 외줄 위에 서 있다.”
유엔 사무총장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의 이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2023년 유엔이 발표한 ‘배출 격차 보고서(Emissions Gap Report)’는, 인류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는 임계점 바로 앞에 서 있다.
온실가스 배출, 다시 사상 최고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CO₂)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약 630억 톤에 달했다. 이는 2022년 대비 0.8기가톤(1.3%) 증가한 수치다. 팬데믹 이전 10년간(2010~2019년)의 평균 증가율인 0.8%를 상회하는 수치다. 이러한 배출량 증가는 산업과 교통 부문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복귀한 것에 기인한다.
문제는 이 증가세가 일시적인 반등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배출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5도, 이제는 ‘목표’가 아니라 ‘문턱’
현재 인위적인 온난화 수준은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3도 상승한 상태다. 보고서는 이 추세라면 10년 이내에 1.5도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이 수치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에서 196개국이 법적으로 합의한 목표선으로, 이 이상 상승하면 기후 시스템에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구테흐스는 “이 보고서는 지금이 결정적인 순간임을 보여준다.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이며, 이대로면 최악의 기후 시나리오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계점을 넘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1.5도의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심각한 기후 영향을 현실로 마주하게 된다. 무더위는 그 강도와 빈도가 모두 극단으로 치달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폭염과 산불이 반복될 수 있다. 해수면은 상승하고, 저지대 도시들은 침수 위협에 놓인다.
기후 변화는 곧 식량과 물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며, 이는 생태계 전반에 타격을 주는 생물다양성 붕괴로 연결된다. 기상이변도 더욱 잦고 강력해져, 홍수·가뭄·태풍 등의 재해가 일상이 된다. 결국, 수천만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감축 속도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빠른 감축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2%, 2035년까지는 57%까지 줄여야 한다고 제시한다.
이를 실현하려면 2030년까지 매년 평균 9%씩 배출량을 감축해야 하며, 이는 지금의 정책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속도다. 하지만 보고서는 현재 각국이 제출한 감축 공약만으로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특히 세계 주요 경제권인 G20 국가들은 2030년 목표를 향한 이행 속도가 매우 더딘 상황이며, 그동안의 선언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지적된다.
기술은 있다, 남은 건 결단 뿐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과 2035년까지 필요한 감축은 이미 존재하는 저비용의 기술로 달성 가능하다. 풍력, 태양광, 에너지 효율 기술은 충분히 상용화되어 있다. 결국 남은 과제는 정치적 결단과 국가 간 협력, 그리고 실질적 행동으로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