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카스피해다. (왼쪽부터 지중해, 흑해, 카스피해 순)
By Aplaice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서론
카스피해(Caspian Sea)는 명칭상 ‘바다’라 불리지만, 지리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호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자리한 이 수역은 단순한 자연지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방대한 면적과 독특한 수리학적 조건은 물론, 석유와 가스 같은 막대한 자원을 품고 있어 역사적으로 늘 국제적 이해관계의 중심에 서 왔다. 오늘날에도 카스피해는 연안국 간의 경계 분쟁과 자원 경쟁, 군사적 긴장이 뒤섞인 복잡한 국제정치의 무대다.
자연 조건
카스피해의 면적은 약 37만 제곱킬로미터로 대략 한반도의 1.7배에 해당하며,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이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러시아의 볼가강을 비롯해 여러 하천이 유입되며, 남쪽은 이란 고원과 접한다.
수면은 해수면보다 약 28미터 낮고, 최대 수심은 1,000미터를 넘는다. 규모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바다’라 불릴 만하다. 염도는 평균적으로 바닷물의 3분의 1 수준이다. 북부는 강의 유입으로 담수에 가깝지만, 남부는 증발량이 많아 상대적으로 염분이 짙다.
이러한 차이는 어류 분포에도 반영되어, 특히 철갑상어 같은 종은 특정 구역에 집중되어 서식한다. 이곳은 전 세계 캐비아 생산의 주요 원천 가운데 하나로 생태적·경제적 가치가 크다.
카스피해는 외해와 연결되는 출구가 없어 수위 변동에 민감하다. 과거 수천 년 동안 해수면은 주기적으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으며,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증발량이 늘어나면서 수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해안 도시와 항만 운영, 어업 자원 관리, 주변 생태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경제적 가치
카스피해의 가장 큰 매력은 에너지 자원이다. 연안 해저에는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 이후 적극적으로 개발에 나섰고, 러시아와 이란은 기존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문제는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였다. 바다로 규정하면 국제 해양법에 따라 해안선 길이에 비례한 배타적 경제수역을 갖게 되지만, 호수라면 연안국이 공동 관리해야 한다. 해석의 차이에 따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석유·가스 개발 이익이 달라지는 것이다.
에너지 자원은 단순히 연안국의 부와 직결되는 문제를 넘어, 외부 세력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린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카스피해 자원 수입에 관심을 보여 왔고,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 속에서 중앙아시아 에너지망과의 연계를 추진했다. 터키 역시 아제르바이잔을 통한 파이프라인 구축에 적극적이다.
군사적 긴장
자원 경쟁은 곧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졌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카스피해를 영향권 내에 두려 했고, 해군력을 배치해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이란 역시 남부 연안을 거점으로 함대를 운영하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 이후 자체 해군력을 강화하면서 안보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카스피해는 내륙호이기에 외부 해군이 직접 진입할 수 없지만, 미국은 우방국 지원과 군사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실제로 연안국 간의 합동 군사훈련, 무기 현대화, 해군 기지 확충 등이 이어지며 긴장이 고조된 적도 있다. 러시아는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카스피해 함대로부터 미사일을 발사해 이 지역 함대가 단순 방어 전력에 머무르지 않음을 과시했다.
협정과 현재 상황
이처럼 갈등이 격화되자, 2018년 연안 5개국은 카자흐스탄 악타우(Aktau)에서 열린 정상회의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은 카스피해를 ‘특별한 수역’으로 정의하면서, 각국에 15해리 영해와 10해리 어업 수역을 인정했다. 나머지 해역과 해저 자원은 공동 관리와 양자 협의로 나누기로 했다. 완벽한 해법은 아니었지만,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법적 공백을 메우는 의미 있는 합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파이프라인 건설 문제, 자원 개발 구역 경계, 군사적 영향력 등은 협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인한 수위 하락은 항만 운영과 자원 채굴 환경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불러오고 있다. 따라서 카스피해는 지금도 국제 정치와 환경 위기가 맞물린 복합적 공간으로 남아 있다.
결론
카스피해는 이름은 바다지만 본질은 호수이고,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라 국제 분쟁의 거대한 무대다. 닫힌 수역이라는 조건이 자원 분포와 수위 변동의 불안정성을 낳았고, 이는 경제 경쟁과 군사 긴장으로 이어졌다. 연안 5개국이 협정을 통해 일정한 질서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은 남아 있다. 결국 카스피해는 자연과 자원, 정치와 안보가 교차하는 복합적 공간으로서,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