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돈의 감각
우리가 돈을 쓸 때, 손끝의 감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준다. 지폐를 꺼내는 동작, 잔돈을 건네받는 감각, 지갑이 얇아지는 무게감. 이 모든 것은 ‘지출’이라는 행위를 뇌가 실제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카드를 긁거나 휴대폰을 터치하는 순간, 결제는 끝난다. ‘돈을 쓴다’는 실감 없이, 소비는 점점 가벼워진다.
그렇다면 이 감각의 차이는 실제로 지출 행동에 어떤 영향을 줄까? 호주 애들레이드대학교(University of Adelaide) 연구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난 40여 년간의 데이터를 모았다.
40년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
연구진은 ‘비현금 결제 수단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71편의 연구, 392개의 효과 크기(effect size)를 종합한 대규모 메타분석(meta-analysis)을 수행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비현금 결제는 소비를 증가시킨다. 효과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한 경향으로 나타났다. 즉, 현금을 쓸 때보다 카드나 모바일 결제를 사용할 때 소비가 늘어난다.
왜 비현금 결제가 지출을 늘릴까?
연구진은 그 이유를 ‘지불의 고통(pain of paying)’ 개념으로 설명한다. 현금을 사용할 때, 우리는 돈이 손을 떠나는 물리적 감각을 경험한다. 이 감각은 뇌가 손실로 인식하며, 지출을 자제하게 만드는 심리적 제동장치로 작용한다.
반면, 전자결제는 이 ‘손실의 감각’을 흐리게 만든다. 결제 과정이 빠르고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돈을 쓰는 부담을 덜 느끼고, 결과적으로 더 쉽게 지출하게 된다.
소비 맥락이 만든 차이
흥미롭게도, 비현금 효과는 소비의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연구에 따르면,
-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에서는 비현금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소비에서는 금액보다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 친사회적 소비(pro-social consumption)에서는 효과가 약하거나 거의 사라진다. → 기부나 팁처럼 ‘이타적 만족’이 동기가 되는 소비에서는 결제 방식이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처럼 비현금 효과는 단순히 결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 행위가 일어나는 상황과 목적에 의해 조절된다.
경기와 환경의 영향
연구는 또한, 경제 상황이 비현금 효과의 크기를 바꾼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경기 호황기에는 소비 심리가 활발해지며, 비현금 결제가 더 큰 소비 증가 효과를 낳는다. 반면 경기 침체기에는 소비자들이 신중해져, 비현금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즉, 결제 방식은 심리적 요인일 뿐 아니라, 거시적 환경과 결합해 작동하는 소비 메커니즘이다.
익숙함이 부르는 변화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비현금 효과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효과는 전반적으로 시간에 따라 약해졌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 소비자의 적응(adaptation): 초기에는 카드 결제가 새롭고 지출의 실감이 약했지만,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현금 결제는 ‘당연한 행위’가 되었다.
- 디지털 결제의 일상화: 결제는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소비자는 손실의 감각 없이 지불하는 데 완전히 익숙해졌다.
- 세대 효과(cohort effect): 젊은 세대일수록 현금 지출 경험이 적어, 애초에 ‘현금의 통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
결국 비현금 결제가 보편화될수록 편리함이 심리적 제동을 대체하고, 그 효과는 점점 습관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결제의 편리함, 소비의 무게
이번 연구는 단순한 소비 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비현금 결제는 소비를 자극하지만, 익숙함과 맥락에 따라 그 유혹은 달라진다.
현금은 ‘돈의 감각’을 되살리고, 비현금 결제는 ‘편리함’을 제공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감각으로 돈을 쓰는가이다.
가끔은 지갑을 열고 손끝으로 돈의 무게를 느껴보자. 그 작은 감각이 우리의 지출을 더 현명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참고:
Schomburgk, L., Belli, A., & Hoffmann, A. O. I. Less cash, more splash? A meta-analysis on the cashless effect. Journal of Retailing, 100(3), 2024. 382–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