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일상 속의 수수께끼
하품은 누구나 하는 흔한 행동이지만, 그만큼 수수께끼가 많은 신체 현상이다. 단순히 피곤할 때만이 아니라, 지루할 때, 배고플 때, 혹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기도 한다. 하루 평균 7~8회 정도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사람은 거의 하지 않고, 또 어떤 사람은 30번 가까이 하기도 한다. 이렇게 빈번하지만 사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산소 때문은 아니다
오랫동안 하품은 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한 반사 작용이라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는 1987년 미국의 생리학자 로버트 프로빈(Robert Provine)과 동료들이 수행한 연구에 의해 반박되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이산화탄소 농도를 평소보다 8배 높인 공기를 흡입하게 했을 때, 호흡은 빨라졌지만 하품은 증가하지 않았다. 반대로 산소를 충분히 들이마셔도 자발적인 하품은 사라지지 않았다. 즉, 하품은 산소 공급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대신 오늘날 많은 연구자들은 하품이 뇌의 각성을 유도하는 메커니즘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하품을 하고 나면 정신이 잠시 또렷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하품 직후 신체 활동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품은 단순히 피곤함의 신호가 아니라, 뇌를 깨우는 일종의 ‘재부팅 버튼’일 수 있다.
변화의 순간에 나타나는 신호
하품은 일정한 맥락에서 자주 등장한다. 아침에 일어난 직후, 오후 피곤함이 몰려올 때, 밤 11시 무렵에 특히 많다는 연구가 있다. 이외에도 흥미롭게도, 고공낙하를 앞둔 낙하산 병사들처럼 새로운 상황이나 긴장이 다가올 때 하품을 하는 경우가 보고되었다. 이는 하품이 단순히 졸음의 징후가 아니라, 상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감염처럼 퍼지는 하품
하품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전염성이다. 누군가 입을 크게 벌리면, 굳이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덩달아 하품이 나온다. 심지어 글로 ‘하품’이라는 단어만 읽어도 실제로 하품이 유발되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하품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공감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플라텍(Steven Platek)은 하품 전염성이 뇌의 사회적 인지와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될 때 나타나며, 이 과정이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발달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타인의 상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할수록 하품에도 더 쉽게 전염된다. 두 살 이전의 아이들에게 하품 전염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태아 시절부터 이어지는 본능
하품은 태어나서 배우는 행동이 아니다. 임신 12주 무렵의 태아 초음파에서 이미 하품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 시기의 하품은 졸음과 무관하며, 오히려 성장과 발달을 돕는 기능을 할 가능성이 있다. 성장 속도가 더딘 태아에서 연속적인 하품이 자주 나타나는 점은, 하품이 혈류를 돕거나 발달에 필요한 자극을 주는 신호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출생 이후에는 맥락이 달라진다. 아기는 하품을 통해 양육자의 관심을 끌고, 어른은 이를 본능적으로 따라 하며 교류가 형성된다. 즉, 하품은 생리적 기능을 넘어서 사회적 유대의 신호로도 작용한다.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하품은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몸짓이지만, 문화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슬람 전승에서는 하품이 악마와 연결된 행위로 여겨져 억누르도록 권장하며, 어쩔 수 없이 하품이 나오면 반드시 손으로 입을 가리라고 가르친다. 이와 비슷한 믿음은 중세 유럽에도 있었으며, 서구 사회에서는 하품이 늘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서양 역사 속에서는 심지어 하품이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 로마 황제 네로가 공연 중일 때 하품을 한 장군 베스파시아누스가 불경죄로 사형 위기에 처한 일화가 전해진다.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은 하품이 영혼의 일부가 빠져나가는 위험한 순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가 하품을 하면 어른이 손으로 입을 가려주거나 짧은 주문을 외우는 풍습이 존재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퍼즐
지금까지 과학은 하품의 많은 부분을 밝혀냈지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다. 하품이 뇌의 각성 작용인지, 상태 전환 신호인지, 혹은 공감의 표현인지 하나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이 모든 요소가 맞물려 오늘날까지 이어진 행동일지 모른다. 분명한 점은, 하품이 단순히 피곤함의 부산물이 아니라, 생리와 사회를 동시에 잇는 다층적 신호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