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두려움의 시대
15세기 후반, 유럽은 이성보다 두려움이 앞서던 시대를 맞이했다. 전염병과 기근, 종교 개혁 전야의 불안 속에서 사람들은 불행의 원인을 인간 바깥의 존재에서 찾기 시작했고, 그 표적이 된 이들은 주로 약초와 민간요법으로 사람을 치료하던 여성 치유사들이었다.
이전까지는 지역 단위의 비난이나 소규모 박해에 그쳤지만, 15세기 후반부터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탄압으로 바뀌어 결국 수만 명의 여성이 화형대에 올랐다. 현대 역사학자들의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약 4만 명에서 6만 명이 마녀로 몰려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광기의 확산을 가능하게 했을까? 미국 산타페 연구소의 역사학자 케리스 도튼 스니트커(Kerice Doten-Snitker)는 그 답을 ‘의식의 확산(ideational diffusion)’이라는 개념에서 찾는다.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마녀사냥은 단순한 미신의 산물이 아니라 인쇄술이 만들어낸 사상의 전염이었다.
인쇄술이 만든 공포의 네트워크
1450년대, 인쇄기의 발명은 지식의 이동 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도튼 스니트커는 1400년부터 1679년까지 중앙유럽 553개 도시의 기록을 분석해, 각 도시에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가 인쇄될 때마다 그 지역과 인근 도시에서 마녀재판이 증가하는 패턴을 발견했다.
즉, 인쇄소가 있던 도시는 새로운 공포의 발신지였고, 그 메시지는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며 하나의 집단적 신념을 형성했다. 그 결과, ‘마녀’라는 개념은 종교적 상징에서 사회적 현실로 변했다.

15세기 구텐베르크 인쇄기의 재현 모형 (출처: 픽사베이)
‘의식의 확산’이란 무엇인가
도튼 스니트커가 말하는 ‘의식의 확산’은 정보나 기술이 아니라 사상과 신념이 사회적 연결망을 따라 전염되듯 퍼지는 과정을 뜻한다.
그녀는 마녀사냥의 확산을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한다.
- 새로운 관념의 등장 ᅳ ‘사탄과 결탁한 마녀’라는 신학적 서사가 형성되었다.
- 매개 기술의 발명 ᅳ 인쇄술이 이 관념을 물리적으로 복제하고 유통했다.
- 사회적 전이 ᅳ 불안정한 시대 상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상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하면서, 마녀사냥은 특정 지역의 사건이 아닌 유럽 전체의 집단적 현상으로 번졌다.
기술이 만든 최초의 ‘바이럴’
도튼 스니트커는 인쇄술을 16세기의 소셜미디어로 비유한다. 당시 인쇄기는 오늘날의 알고리즘처럼 새로운 생각을 퍼뜨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며 공포를 재생산했다.
그 결과, 인쇄술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공포와 혐오가 ‘바이럴’하게 확산된 사례가 되었다. 마녀사냥은 종교의 광기이자, 동시에 정보기술의 부작용이었다.
결론: 기술이 불러온 사상의 전염
도튼 스니트커의 연구는 마녀사냥을 이렇게 요약한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광기를 낳을 수 있다.”
인쇄기는 인류의 지식혁명을 이끌었지만, 그 첫 번째 대규모 응용은 집단적 공포의 확산이었다. 마녀사냥은 기술과 사상이 결합할 때 사회가 어떻게 광기로 기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근대 유럽의 첫 ‘사상적 팬데믹’이었다.
참고
Doten-Snitker, K. (2024). Ideational diffusion and the great witch hunt in Central Europe. Theory and Society, 53, 1291–1319. Springer Nature. Open Access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