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서 시작된 연필 다듬기
연필이 대중화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심을 뾰족하게 만들기 위해 작은 칼을 사용했다. 프랑스어로 ‘템페리노(temperino)’라 불린 이 칼은 오늘날 커터나 휴대용 나이프와 비슷했다. 그러나 연필심이 자주 부러지고, 일정한 각도로 깎기가 어려웠다. 쓰다 보면 손에 힘이 들어가 글씨체가 고르지 못해지는 경우도 잦았다.
19세기, 연필깎이의 탄생
연필깎이는 1828년 프랑스의 베르나르 라셰르(Bernard Lassimone)가 발명해 최초의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초기 모델은 구조가 복잡하고 널리 쓰이지 못했다. 이후 1840년대에 들어서 영국과 프랑스에서 개선된 모델이 나오면서 대중화의 길이 열렸다. 연필을 넣으면 칼날이 일정한 각도로 깎아주는 방식은 글쓰기와 그림 작업의 효율을 크게 높였다.
손잡이를 돌리던 시대, 주피터 1
핀란드 탐페레 경찰 박물관에 전시된 주피터 1 연필깎이
By Tiia Monto,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20세기 초, 연필깎이는 또 다른 혁신을 맞이했다. 1905년 등장한 주피터(Jupiter) 1 모델은 주철로 만들어진 크고 튼튼한 기계식 연필깎이였다. 손잡이를 돌리면 톱니바퀴가 움직이고, 동시에 연필과 칼날이 회전하면서 부드럽게 심이 깎였다. 잘려 나온 나무 조각은 작은 통에 모여, 주변을 지저분하게 만들지 않았다.
비록 길이 36-38cm, 폭 15-20 cm에 달하는 부피 때문에 휴대성은 떨어졌지만, 사무실과 학교에서 널리 쓰이며 “연필깎이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경매 시장에서 170유로에 낙찰된 바도 있고, 수집가들에게는 여전히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기의 힘, 그리고 오늘날의 연필깎이
ELM V6 전기 연필깎이, 미국식 A형(Type A) 플러그가 장착됨.
By Jason Quinn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전동 연필깎이가 등장했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일정한 각도로 매끄럽게 심을 깎을 수 있었고, 대량의 필기도구를 준비해야 하는 교실이나 사무실에서 특히 유용했다. 이후 크기와 디자인이 소형화되면서 개인용으로도 널리 보급되었다.
오늘날 연필깎이는 수동식, 전동식, 휴대용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비록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연필의 사용 빈도가 줄었지만, 미술, 디자인,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활용도가 높은 도구다.
마무리하며
연필깎이는 단순한 문구류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글쓰기와 예술, 교육의 역사가 담겨 있다. 칼로 깎던 불편함에서 시작해, 정밀한 기계식 장치와 전기의 힘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발명품. 이 작은 도구는 인류의 지식과 창작 활동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