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룩소르 오벨리스크
서론 — 하늘로 솟은 돌, 문명의 언어
파리 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에는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서 옮겨온 거대한 돌기둥이 서 있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과 로마 라테라노 광장에도 같은 형식의 석주가 자리한다. 수천 년 전 사막의 태양 아래 세워졌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obelisk)가 오늘날 유럽의 중심부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오벨리스크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태양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이 신에게 바친 헌정이자, 왕권과 신성,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 돌로 된 언어였다. 한 시대의 믿음과 권력이 한 조각의 돌기둥 안에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오벨리스크란 무엇인가 — 태양신 라를 향한 기둥
오벨리스크는 하나의 거대한 석재(monolith)를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사면체의 기둥으로, 꼭대기는 작은 피라미드 형태(pyramidion)로 마무리된다. 이 피라미디온은 태양광선을 상징하며, 종종 금박으로 마감되어 햇빛을 반사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신 라(Ra)의 힘을 이 돌기둥 속에 새겨 넣었고, 신전의 입구마다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세워 신성한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었다. 표면에는 파라오의 이름과 업적, 신에 대한 찬사가 상형문자로 새겨졌다.
오벨리스크는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신과 인간을 잇는 기록물이자, 왕권이 신성한 질서 속에 놓여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이었다. 하늘을 향해 뻗은 그 형태는 태양과의 대화를 시각화하고, 신의 질서를 땅 위에 구현한 기념물이었다.
이집트의 대표적 오벨리스크 — 태양, 왕권, 신성의 기둥
이집트에는 수많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졌으며, 오늘날에도 여러 기둥이 원위치 혹은 신전 터에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룩소르(Luxor), 카르나크(Karnak),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오벨리스크는 고대 형태를 비교적 온전히 간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룩소르 신전 앞,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 (원래 콩코드 광장의 기둥과 한 쌍)
- 룩소르 오벨리스크(Luxor Obelisk)
룩소르 신전 앞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파라오 람세스 2세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왕권과 찬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쌍을 이루었던 또 하나의 기둥은 19세기에 이집트의 무함마드 알리 파샤(Muhammad Ali Pasha)가 프랑스에 기증했으며, 1833년 파리에 도착해 1836년 10월 25일 콩코르드 광장에 세워졌다. 남아 있는 한 기둥은 여전히 사막의 햇살 속에서 고대 테베(Thebes)의 영광을 증언한다.

카르나크 신전의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 카르나크 신전의 하트셉수트 오벨리스크 (Hatshepsut Obelisk, Luxor)
카르나크 신전의 오벨리스크는 하트셉수트(Hatshepsut) 여왕이 세운 작품으로, 이집트 내에서 가장 높은 고대 오벨리스크(약 29.5m)다. 여왕은 자신을 남성 파라오로 묘사하며 신성한 통치자의 지위를 주장했는데, 이 오벨리스크는 그녀가 라 신에게 바친 헌사이자 여성 통치자의 권위를 시각화한 기념비였다.

헬리오폴리스의 세누스레트 1세 오벨리스크,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
By Rijksmuseum, CC0, wikimedia commons.
- 헬리오폴리스 오벨리스크 (Heliopolis Obelisk, Cairo)
카이로 북쪽 마타리야 지역에 남아 있는 이 오벨리스크는 파라오 세누스레트 1세(Senusret I)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이자 원위치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태양의 도시’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의 기둥은 태양신 라를 향한 믿음이 처음 형태를 얻은 장소를 상징한다.
이 세 기둥은 각각 왕권, 신성, 그리고 태양 숭배의 기원을 상징하며, 오벨리스크가 이집트 문명 속에서 어떻게 신앙과 권력의 언어로 기능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 문명의 기둥이 제국의 상징으로
로마 제국(Roman Empire)은 이집트를 정복한 뒤, 그들의 장엄한 기둥을 제국의 수도로 옮겨왔다. 아우구스투스는 플라미니오(포폴로) 오벨리스크를 기원전 10년에, 칼리굴라는 헬리오폴리스의 오벨리스크를 서기 40년에, 콘스탄티우스 2세는 카르나크의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서기 357년에 로마로 반입했다.
오벨리스크는 이제 전리품(spoils)이자 제국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로마의 거리 곳곳은 이집트의 기념비로 장식되었다.
- 라테라노 오벨리스크 (Lateran Obelisk, Rome)
라테라노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카르나크 신전에서 옮겨온 것으로,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가 제작을 시작하고 투트모세 4세가 완성했다.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가 로마로 반입해 서커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에 세웠고, 1588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본체 높이 32.18m(전체 45.7m)**로, 현존 최대의 고대 이집트 오벨리스크다.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St. Peter’s Square Obelisk, Vatican City)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중앙에 자리한 오벨리스크 역시 헬리오폴리스 출신이다. 칼리굴라(Caligula) 황제가 로마로 옮겨 네로 경기장(Circus of Nero)의 중앙에 세웠고,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가 1586년 9월 10일,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의 지휘 아래 현재의 위치로 재배치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에게 바쳐졌던 돌기둥은 이렇게 기독교 세계의 성지 한복판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집트의 신전 앞에 서 있던 오벨리스크는 로마에서는 제국의 위엄으로, 바티칸에서는 신앙의 중심으로, 파리에서는 근대 문명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돌기둥은 자리를 옮기며 의미를 바꾸었지만, 그 형태 속에는 여전히 태양을 향한 고대의 언어가 살아 있다.
결론 — 문명을 세우는 기둥,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지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태양신에게 바친 헌정의 기둥이었고, 로마에서는 제국의 권력과 정복을 상징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고대 문명에 대한 경외와 학문적 호기심 속에서 다시 세워졌다.
오늘날의 오벨리스크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국가나 인물을 기리는 기념비, 도시의 중심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자리한다. 그 수직적 형태는 시간과 문명의 연속성을 드러내며, 한 시대의 가치와 기억을 기록하는 기호로 남는다.
이처럼 오벨리스크는 기능과 해석이 변해도, 언제나 인간이 자신과 문명을 표현하는 방식으로서 지속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