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두딘체프(Владимир Дмитриевич Дудинцев)의 소설 『빵만으론 살 수 없다』(Не хлебом единым) 줄거리

빵만으론 살 수 없다 표지 이미지 (AI 생성)

제1부 ― 무즈가(Музга)의 질서와 균열

전쟁이 막 끝난 직후의 시베리아 산업 도시 무즈가(Музга)는 전시 중 급조된 거대한 산업 콤비나트를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였다. 다섯 개의 높은 굴뚝은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내뿜었고, 냉각탑에서는 흰 증기가 솟아올랐다. 도시의 일상과 리듬은 모두 공장의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돌아갔다. 사람들의 시간은 개인의 필요보다 생산 계획에 의해 정리되었고, 이곳은 지도에서 변두리에 놓여 있었지만 국가 재건의 계산 속에서는 결코 주변이 아니었다.

이 콤비나트를 책임지고 있던 인물은 레오니드 이바노비치 드로즈도프(Леонид Иванович Дроздов)였다. 왜소한 체구였으나 존재감은 강했고, 그는 행정의 논리와 권력의 흐름을 정확히 읽는 인물이었다. 노동자들에게 그는 엄격한 관리자였고, 간부들 사이에서는 계산이 빠르고 처세에 능한 행정가로 평가되었다. 그는 지방을 자신의 종착지로 여기지 않았으며, 무즈가는 통과 지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모스크바(Москва)를 향하고 있었다.

그의 젊은 아내 나데즈다 세르게예브나 드로즈도바(Надежда Сергеевна Дроздова), 나데즈다는 지역 학교 교사였다. 키가 크고 단정한 몸매의 그녀는 모스크바에서 사 온 밍크 코트를 입고 눈 덮인 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그녀의 회색 눈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고요한 침묵이 어려 있었다. 남편의 권위와 안정된 생활은 그녀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도시의 다른 삶과 거리를 두게 했다.

어느 겨울날, 드로즈도프 부부는 모스크바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역에는 간부들과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고, 드로즈도프는 그들 앞을 지나며 오렌지를 껍질째 벗겨 길에 던졌다.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가며 처음 보는 주황빛 껍질을 집어 들었다.

이 무렵 무즈가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드미트리 알렉세예비치 로파트킨(Дмитрий Алексеевич Лопаткин)은 물리·수학부를 졸업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장교였다. 전쟁 후 교사로 일하던 그는 원심 주조 방식을 이용한 새로운 주철관 제조 기계를 고안했다. 그의 설계는 기존 방식보다 금속 소비를 크게 줄이고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는 이를 단순한 기술적 시도가 아니라 낭비를 줄이기 위한 필연적 개선으로 여겼다.

3년 전 그는 이 기계를 공식적으로 제출했고, 한 차례 모스크바로 호출되어 프로젝트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는 법에 따라 기존 직장을 사직하고 수도로 올라갔지만, 두 달 뒤 “연구개발 자금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형식상 이유는 예산 부족이었으나, 곧 그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바실리 자하로비치 아브디예프(Василий Захарович Авдиев)가 자신의 설계를 밀어붙이기 위해 그의 프로젝트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직장도 잃고 생계도 막막해진 그는 무즈가로 돌아와 반지하 방에서 도면을 붙잡고 연구를 계속했다. 방 안에는 가구보다 제도판이 중심이었고, 낮과 밤의 구분은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은 약해지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 콤비나트 발명국을 통해 설계 재검토를 요청했고, 결국 드로즈도프를 직접 찾아갔다. 드로즈도프는 그를 맞았지만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장관부는 이미 아브디예프의 모델을 채택했고, 콤비나트에는 그 설계를 제작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드로즈도프는 그에게 고독한 발명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이제는 집단 연구와 승인된 권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라는 것이었다. 드로즈도프는 연료를 보내주는 식의 도움은 허용했지만 체계에 맞서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로파트킨은 그 태도의 본질을 정확히 읽어냈다.

이 무렵 나데즈다는 병든 제자를 문병하러 갔다가 로파트킨을 다시 만났다. 작은 방 안에서 그는 군인처럼 곧은 자세로 서 있었고, 초라함보다 긴장된 존엄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왜 이 기계를 만들었는지를 설명했다. 전쟁 중 보았던 낭비와 비효율이 출발점이었으며, 재건이란 자원 절약 없이는 공허하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는 선동이 없었고, 계산과 확신이 있었다. 나데즈다는 그가 미치광이가 아니라 타협을 모르는 정직한 사람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만남은 그녀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 남편의 세계는 상승과 안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고, 로파트킨의 세계는 고립과 책임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제2부 ― 모스크바(Москва)와 ‘기프로리토’(Гипролито)의 벽

무즈가에서 사실상 거절을 받은 뒤에도 로파트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문제는 개인적 인정이 아니라 기술의 타당성이었다. 어떤 방식이 더 적은 금속으로 더 많은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가. 이 질문은 그에게 양심의 문제였다. 그는 다시 모스크바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그는 이미 수십 번 검토했던 계산표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감정이 아니라 숫자에 의해 지지되기를 원했다.

그가 들어간 기관은 중앙 연구·설계 기관 ‘기프로리토(Гипролито)’였다. 이곳은 형식상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지는 장소였지만, 실제로는 학문적 권위와 행정 권력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복도는 조용했고, 문에는 이름 대신 직함이 적혀 있었다. 그는 접수실에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지만, 일부는 그를 “그때 그 단독 발명가”로 알아보았다.

기술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탁자 양쪽에는 위원들이 앉았고, 푼다토르(Пундатoр), 테피킨(Тепикин), 설계 부문 책임자 우류핀(Урюпин)이 자리를 차지했다. 실질적인 중심에는 아브디예프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권위로 자리 잡은 이름이었다.

로파트킨은 도면을 펼치고 원심 주조 과정에서의 원심력 분배, 금속 흐름의 안정화, 냉각 효율 개선 수치를 설명했다. 그의 말은 빠르지 않았고, 과장도 없었다. 그는 반박을 예상하며 자료를 단계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첫 질문은 기술의 핵심을 향하지 않았다. 위원들은 먼저 그의 설계가 집단 연구의 결과물인지 물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자신이 설계했다고 답했다. 회의의 분위기는 즉시 변했다. 산업 적용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기술적으로 검증된 쪽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논리적으로는 옳은 답이었지만 회의실의 공기는 더 냉랭해졌다.

마지막으로 아브디예프가 발언했다. 그는 노골적인 공격 대신 우려를 표명했다. 젊은 발명가의 열정을 이해하지만 산업은 열정으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한 문장이 방향을 결정지었다. 위원회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형식적 표현을 사용해 사실상 부결을 통보했다. 회의는 끝났고, 아무도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누구도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로파트킨은 장관 대리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 슈티코프에게 직접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는 법 조항과 기술 자료를 인용했고, 발명가 권리 보호 규정을 명시했다. 또한 자신의 프로젝트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탄원서는 접수되었으나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검토 중이었으나 실제로는 내부에서 순환하며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는 다시 썼다. 이번에는 감정 표현을 완전히 제거하고 숫자와 근거만 남겼다. 그러나 체계의 작동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문서는 처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한편 무즈가에서는 드로즈도프가 이미 선택을 끝낸 상태였다. 콤비나트에서는 아브디예프의 설계를 본격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앙이 승인한 모델이라면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고 말했고, 로파트킨의 시도를 이미 배제된 안건처럼 다루었다. 그는 위험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중앙의 결정은 이미 내려졌고, 그는 그에 맞춰 움직일 뿐이었다.

이 시기에 나데즈다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타자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로파트킨의 탄원서를 다시 정리했다. 중앙위원회, 기술부, 감독 기관 등 여러 기관으로 동시에 발송했다. 한 통이 막히면 다른 통로를 찾았다. 그녀는 안전을 계산하지 않았고, 옳고 그름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선택은 드로즈도프와 그녀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벌려 놓았다. 그들은 같은 집에 살았지만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거절 이후 로파트킨은 이 싸움이 단순한 기술적 논쟁이 아니라 질서에 대한 도전임을 깨달았다. 중앙이 한 번 내린 결정은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3부 ― 고발, 재판, 그리고 수감

기프로리토에서의 부결 이후에도 로파트킨의 설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계산과 도면은 일부 기술자들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었고, 금속 절약 효과가 분명하다는 사실은 기술자라면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갈리츠키(Галицкий)라는 연구소 소장이 그에게 접근했다. 그는 군복 차림이었고, 행정 언어와 기술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로파트킨을 따로 불러, 공식 경로로는 어렵지만 국가 차원의 특수 프로젝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설명 없이 “폐쇄 연구실”이라는 말만 꺼냈다.

로파트킨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중앙 권력의 구조를 이미 경험했다. 그러나 갈리츠키의 말에는 계산보다 실용이 담겨 있었다. 그는 참여를 결정했다.

폐쇄 연구실은 음산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하고 정돈된 장소였다.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고, 문서는 관리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다시 도면을 펼쳤다. 이전보다 더 정밀한 계산, 회전축의 안정성 강화, 원심력 분배의 세밀한 조정이 이어졌다. 그는 금속 흐름을 더 균등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를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데즈다의 의견도 반영되었다. 그녀는 기술 전문가는 아니었으나, 논리 구조를 점검하고 문서 정리를 도왔다. 그들의 협력은 조용했지만 긴밀했다.

이 시기 로파트킨은 오랜만에 기술자로서의 평온을 느꼈다. 그는 다시 계산과 설계에 몰입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아브디예프의 설계는 이미 여러 공장에서 제작에 들어가 있었지만, 실험 결과에서 금속 소비량이 예측보다 높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산 효율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직 공개적 문제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내부 보고서에는 이상이 기록되고 있었다. 아브디예프는 자신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음을 감지했다. 이 시점에서 로파트킨의 재등장은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위협이었다.

공격은 기술적 반박이 아니라 행정적 고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로파트킨이 폐쇄 연구실의 문서를 외부인에게 열람시켰다는 혐의가 제기되었다. 외부인은 나데즈다였다. 문제의 문서는 주로 계산표와 설계 설명이었고 군사 기밀과 직접 연결된 자료는 아니었으나, “폐쇄 연구 자료”라는 형식만으로도 혐의는 성립될 수 있었다.

수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사관은 반복적으로 물었다. 왜 외부인에게 자료를 보여주었는지, 그녀의 소속은 무엇인지,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로파트킨은 기술적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었으며, 기밀 유출 의도는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사 기록에는 다른 표현이 적혔다. 절차 위반 인정, 의도 불명확. 행정 언어는 맥락을 단순화했다.

재판은 공개 형식으로 진행되었지만 실질적인 논쟁은 허용되지 않았다. 변호는 제한적이었고, 증거는 선택적으로 제시되었다. 검사는 국가 기밀 관리 체계를 위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피해의 유무와 관계없이 에 대한 위험이라는 표현은 충분히 무거웠다.

최후 진술에서 로파트킨은 자신의 설계와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자원 절약과 기술 발전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판결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는 8년형을 선고받았고, 연구 문서에는 파기 명령이 내려졌다.

재판이 끝난 후 분위기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슈티코프는 사건을 규정 위반 사례로 분류했고, 기술 논쟁은 언급되지 않았다. 드로즈도프는 공개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택했다. 그 침묵은 계산된 선택이었다. 이 사건이 그의 승진 경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데즈다는 자신이 고발의 명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지만 체계가 개인을 어떻게 도구로 사용하는지 깨달았다. 그녀와 드로즈도프 사이의 거리는 더 이상 감추어지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현실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수감 생활 동안 로파트킨은 자신의 싸움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것이 단지 설계 승인 문제였는지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그는 한 번 내려진 결정에 맞서는 일이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냉소로 기울지는 않았다. 그의 확신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한편 안토노비치는 파기 직전 일부 도면을 따로 보관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저항하지 않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도면을 남겨두었다. 체계 내부에서도 모든 사람이 같은 계산을 따르지는 않았다.

제4부 ― 역전, 책임 전가, 그리고 끝나지 않은 전투

1년 반이 지난 뒤, 로파트킨의 사건은 재검토 대상이 되었다. 정치적 분위기가 급격히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앙 내부에서 일부 보고서가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그가 저지른 것으로 기록된 ‘규정 위반’이 실제로는 기술적 판단과 관련된 맥락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조심스럽게 언급되었다. 사건은 완전히 무효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형량은 감형되었고, 그는 조기 석방되었다.

그러나 석방이 곧 복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직위도, 연구실도, 확실한 지위도 없는 상태로 풀려났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설계가 완전히 사라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만약 모든 문서가 파기되고 기계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면, 싸움은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즈가로 향했다. 도시는 겉으로는 변하지 않은 듯 보였다. 굴뚝은 여전히 연기를 내뿜고, 교대 시간에 맞추어 노동자들이 이동했다. 그러나 내부에는 작은 균열이 진행 중이었다.

안토노비치와 몇몇 기술자들은 공개적으로는 침묵했지만 비공식적으로 계산을 이어갔다. 로파트킨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조심스럽게 도면을 펼쳐 보였다. 회전축의 보강 설계, 금속 유입 경로 수정, 냉각 균형 계산이 추가되어 있었다. 그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수치를 확인했다. 자신의 설계가 여전히 기술적으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기계는 시제품 단계까지 진행되어 있었다.

한편 아브디예프의 기계는 점차 문제를 드러냈다. 금속 소비량이 예상치를 초과했고, 손실은 누적되었다. 처음에는 이를 단순한 기술적 편차로 분류했으나 같은 보고가 반복되었다. 콤비나트 내부에서는 두 설계를 비교한 계산표가 비공식적으로 돌기 시작했다. 숫자는 명확했다. 로파트킨 모델은 더 적은 금속을 필요로 했다.

슈티코프는 상황을 조정하려 했다. 그는 금속 사용 기준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기준이 바뀌면 과소비는 정상 범위로 해석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체계 내부에서 낯선 일이 아니었다. 결과를 바꾸기보다 기준을 수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제가 있었다. 대안 설계가 이미 존재했고, 작동 중이었다. 이 사실을 완전히 은폐하기는 어려웠다.

보고서는 상부로 올라갔다. 조사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정리는 예상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설계 적용 과정에서의 기술적 판단 오류가 우류핀과 막슈텐코에게 돌아갔다. 그들은 책임을 지는 위치에 놓였다. 아브디예프는 권위자로서 조언을 제공했을 뿐이라는 해석 아래 직접적 책임에서 벗어났다. 슈티코프 또한 직위 이동이라는 형태의 조정만을 거쳤다. 체계는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장관부는 로파트킨의 설계를 공식적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연구소에 남아 지원을 받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그의 기계는 산업 적용 대상으로 인정되었다. 그것은 개인적 승리이자 기술적 승인으로 기록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아브디예프, 슈티코프, 푼다토르, 테피킨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과거의 충돌은 언급되지 않았고, 화해를 상징하는 잔이 제안되었다. “이제 지난 일은 잊읍시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로파트킨은 잠시 그 잔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설계가 인정받았음을 알고 있었지만, 과정 속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잔을 들지 않았다. 계산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의 거절은 분노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다. 체계는 일부 수정을 거쳤을 뿐, 구조 자체가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연회가 끝난 뒤 그는 발코니로 나갔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눈은 난간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공장 굴뚝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도시의 윤곽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이어져 있었다.

나데즈다 세르게예브나 드로즈도바가 그의 곁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데즈다가 조용히 물었다.

“많은 것들을.”

그는 잠시 더 침묵했다. 도시 저편으로 시선을 던진 채, 마치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듯했다.

“만약 내가… 더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면?”

그의 말은 결심이라기보다 질문에 가까웠다.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다시 싸움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나데즈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녀의 움직임은 말보다 분명했다.

그는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승리의 길이라기보다 책임의 길처럼 느껴졌다. 그 길은 굽이치며 멀리 이어져 있었고, 엄숙하게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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