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현실주의: 왜 우리는 늘 우리가 옳다고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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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현실 = 진짜 현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토론에서 상대방의 주장이 아무리 길고 복잡해도 결국은 ‘틀렸다’고 느껴지는 순간 말이다. “내가 본 게 맞고, 저 사람은 뭔가 잘못 이해했네.” 이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의심조차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은 이런 태도를 “순진한 현실주의(naïve realism)”로 정의한다.

순진한 현실주의란, 자신이 보고 이해한 세계가 곧 객관적 현실이라고 믿는 경향을 뜻한다. 따라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지하거나, 편향됐거나, 심지어 악의적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 오해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연구로 드러난 자기 확신의 함정

리 로스(Lee Ross)와 앤드류 워드(Andrew Ward)가 1996년 논문에서 정립한 이 개념은 수많은 실험으로 확인되었다. 예컨대 최근 오하이오 대학교 연구에서는 약 1,200명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다. 참가자들에게 특정 상황을 설명하면서, 일부는 한쪽 관점만, 일부는 반대쪽 관점만, 또 다른 일부는 두 관점을 모두 제공받았다. 그러나 실험이 끝난 후 세 그룹 모두 자신들이 충분히 균형 잡힌 이해를 갖췄다고 확신했다.

비슷한 결과는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되었다. 프로닌(Emily Pronin)과 동료들의 연구(2004)는 순진한 현실주의가 어떻게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타인의 편향은 잘 인식하면서도 자신의 편향은 보지 못하는 현상을 ‘편향 맹점(bias blind spot)’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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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 갈등 속의 현실주의

이런 사고방식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킨다. 정치적 논쟁에서 상대 진영을 “팩트를 무시하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태도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로스와 워드, 로빈슨(Robinson) 등의 연구(1995)는 사람들이 상대 집단의 입장을 실제보다 더 극단적으로 왜곡해서 인식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는 협상과 대화의 여지를 줄이고, 갈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방식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논쟁은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라는 구도로 수렴한다. 순진한 현실주의는 그래서 이름 그대로 순진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순진하지 않을 수 있다. 가정에서의 다툼부터 국제 분쟁에 이르기까지, 이는 인간 사회의 다양한 갈등에 불을 붙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함정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먼저, 내가 보고 이해하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자의적 해석일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상대방을 곧장 무지하거나 악의적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태도도 필요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입장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첫걸음이 된다.

물론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의 뇌는 스스로의 인식을 사실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늘 옳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대화와 이해가 가능해진다.

결론: 나의 현실은 하나의 현실일 뿐

순진한 현실주의는 단순한 심리학 개념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타인을 대하며, 갈등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강력한 틀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전부라고 믿는 태도를 버리고, 다른 이의 시각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중요한 건 확신이 아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겸손과 열린 태도, 그것이 순진한 현실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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