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언덕, 리투아니아의 기억과 저항의 상징

리투아니아 십자가의 언덕 근경

리투아니아 샤울라이의 십자가의 언덕

By Pudelek (Marcin Szala) – Own work,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리투아니아 북부 도시 샤울랴이(Šiauliai) 근처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특별한 장소가 있다. 바로 십자가의 언덕(Hill of Crosses)이다. 이 언덕은 단순한 종교적 순례지가 아니라 리투아니아 민족이 겪어온 고난과 저항, 그리고 신앙의 끈질긴 힘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상징이다.

언덕의 기원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여러 차례 반란이 일어났다. 제국은 폭력으로 이를 진압했고,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행방이 묘연해졌다.

시신을 찾지 못했거나 매장을 금지당한 유가족들은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작은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했다. 이 행위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억압받는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행위가 되었다.

소련 시대의 파괴와 재건

차르 체제가 무너지고 소련이 들어선 이후, 십자가의 언덕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특히 스탈린 시대, 무신론을 내세운 소련 정권은 종교적 상징을 철저히 억압했다. 십자가의 언덕은 그 탄압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었다. 언덕은 여러 차례 불도저로 평탄화되었고, 십자가들은 불태워지거나 철거되었다. 심지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뜨렸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인들은 굴하지 않았다. 낮에 부서진 십자가는 밤이면 다시 세워졌다. 소련 당국이 아무리 파괴를 반복해도 사람들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 언덕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억압에 맞서는 민족의 끈질긴 저항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끈질김의 상징

이러한 역사 속에서 십자가의 언덕은 리투아니아인들의 끈질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가 되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수없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진 십자가들은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심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증명한다. 언덕 위에는 작은 손십자가에서부터 거대한 나무와 금속 십자가까지,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 수십만 개의 십자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리투아니아 십자가의 언덕 원경

리투아니아 샤울라이의 십자가의 언덕

By User Trsqr, CC BY-SA 1.0, wikimedia commons.

세계적 성지로

냉전이 끝나고 리투아니아가 독립한 뒤, 십자가의 언덕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교황은 이 언덕을 ‘희망과 평화, 그리고 헌신의 상징’으로 선포했고, 이는 리투아니아 국민들에게 깊은 자긍심을 안겨 주었다.

오늘날 십자가의 언덕은 리투아니아를 찾는 이들이 반드시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 자신만의 십자가를 세우고, 개인적인 기도와 소망을 남긴다. 그 결과 언덕 위의 십자가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이곳은 여전히 살아 있는 신앙과 기억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마무리하며

십자가의 언덕은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다. 그것은 리투아니아 국민이 역사의 억압 속에서 지켜온 정체성, 신앙, 그리고 끈질긴 저항의 기록이다. 언덕에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들은 고통의 역사와 함께,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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