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화가 로만 막시포비치 볼코프가 그린 구투조프
By R.M. Volkov,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쿠투조프의 뇌 손상과 1812년의 선택
수술은 한 개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존이 때로는 역사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 피닉스에 위치한 배로 신경학연구소(Barrow Neurological Institute) 연구진은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프랑스 황제 나포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 결정적으로 실패한 배경을 러시아군 총사령관 미하일 구투조프(Mikhail Kutuzov)의 과거 뇌 손상과 연결해 분석한 것이다.
두 발의 총상
쿠투조프는 젊은 시절 오스만 제국과의 전투 중 머리에 두 차례 총상을 입었지만(1774년, 1788년), 의학적으로 거의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중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첫 번째 총탄은 “두 눈 뒤쪽을 지나 한쪽 관자에서 다른 쪽 관자까지 머리를 관통했다.” 두 번째 총탄은 뺨을 통해 들어와 윗니를 파괴하고 두개 내부를 통과한 뒤 후두부로 빠져나갔다.
러시아군에 소속된 프랑스 외과의사 장 마소(Jean Massot)는 그의 상처를 치료한 뒤 이렇게 기록했다. “의학적 규칙에 따르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두 번의 부상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운명이 쿠투조프에게 무언가 위대한 일을 맡겼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18세기 후반의 의학 수준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생존 사례였다. 연구진은 이 총상이 전두엽 기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전두엽은 충동 조절, 장기 전략 수립, 위험 판단과 관련된 뇌 영역이다.
전략인가, 신경학적 변화인가
1812년, 나폴레옹의 대군이 러시아로 진격했을 때 쿠투조프는 정면 결전을 피하고 점진적 후퇴를 선택했다. 이후 모스크바를 방기하고 도시를 불태운 뒤 철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결정은 결국 프랑스군을 보급 없이 혹한 속에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나폴레옹 원정의 붕괴로 이어졌다.
배로 연구진은 쿠투조프의 뇌 손상이 그의 의사결정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탐색했다. 일부 기록에서 그는 이전보다 더 신중하고 결정을 미루는 경향을 보였으며, 성격 변화가 관찰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연구진은 이것이 전략적 천재성의 표현인지, 뇌 손상에 따른 변화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들의 논문은 “역사가 신경학적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역사는 뇌를 통해 움직인다
이 가설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역사적 결정은 순전히 이성적 계산의 산물일까, 아니면 개인의 신경학적 상태 역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배로 연구진은 쿠투조프의 사례를 통해 한 번의 수술이 한 사람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고, 그 생존이 다시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졌으며, 그 선택이 유럽사의 전환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이를 확정된 인과관계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연구는 역사적 결정이 신경학적 요인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참고 논문
Kushchayev, S. V., Moskalenko, V. F., Wiener, P. C., & Tsymbalyuk, V. I. (2015). Two bullets to the head and an early winter: Fate permits Kutuzov to defeat Napoleon at Moscow. Neurosurgical Focus, 39(1), E3. https://thejns.org/focus/view/journals/neurosurg-focus/39/1/article-pE3.x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