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Как закалялась сталь) 줄거리와 작품 해설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장면을 담은 소련 우표.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장면을 담은 소련 우표.

By Post of the Soviet Union,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저자: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오스트롭스키(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Остро́вский)
발표: 1932~1934년에 걸쳐 문예지 「젊은 근위대」(Молодая гвардия) 연재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Как закалялась сталь) 줄거리

제1부

1

이야기는 우크라이나의 작은 철도 도시 셰페토프카(Шепетовка)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다. 수업을 맡고 있는 사람은 학교 교사이면서 정교회 사제인 바실리 신부(отец Василий)였다. 그는 두툼한 몸집에 목에는 큰 십자가를 걸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늘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명절 전에 우리 집에 와서 공부한 것을 말했던 사람은 일어나거라.”

여섯 명의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명의 남학생과 두 명의 여학생이었다. 신부는 여자아이들에게 앉으라고 말하고 남은 네 명의 소년을 앞으로 불렀다. 그는 소리쳤다.

“너희 중 누가 담배를 피우느냐?”

소년들은 모두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신부는 부활절 반죽에 누가 마호르카(값싼 담배잎)를 넣었는지 물으며 주머니를 뒤집어 보라고 명령했다.

소년들은 주머니에 있던 물건들을 책상 위에 꺼내 놓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신부의 시선은 마지막 남은 소년에게 향했다. 그 소년은 파벨 코르차긴(Павел Корчагин)이었다. 친구들은 그를 파브카라고 불렀다.

신부가 물었다. “너는 왜 우두커니 서 있는 거냐?”

파벨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그의 바지에는 실제로 주머니가 없었다. 신부는 그를 노려보며 교회 반죽을 망쳐 놓은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파벨의 귀를 잡아당기며 교실 밖으로 쫓아냈다.

파벨은 학교 건물 밖 계단에 앉았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야 코르차기나(Мария Яковлевна Корчагина)는 부잣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두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파벨의 형 아르툠 코르차긴(Артём Корчагин)은 철도 기관차 정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결국 파벨은 집으로 돌아갔다. 학교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파벨은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일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그를 철도역 식당에 취직시켰다. 파벨은 그곳에서 접시를 씻고 부엌 일을 도우며 하루 종일 일했다. 식당에는 기관차에서 내린 철도 노동자들과 여행객, 군인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접시와 컵은 계속 쌓였고 부엌은 늘 뜨거운 김으로 가득했다. 일은 단순했지만 힘들었다. 그는 하루 종일 접시와 컵을 씻고 부엌 바닥을 닦으며 끓는 물을 날랐다.

파벨은 식당에서 2년 동안 일했다. 그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웨이터 프로호르(Прохор)는 파벨을 자주 괴롭혔다. 어느 날 밤 근무를 하던 파벨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수도를 틀어 놓은 채 잠이 들었다. 물이 넘쳐 부엌과 대합실이 물에 잠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로호르는 격분하여 파벨을 심하게 때렸다.

소식을 들은 형 아르툠이 식당으로 찾아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프로호르에게 다가가 단 한 번의 주먹으로 그를 쓰러뜨렸다. 이 사건은 곧 경찰에 알려졌고 아르툠은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며칠 뒤 아르툠은 풀려났다. 그는 파벨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는 계속 일할 필요 없어.”

얼마 후 파벨은 도시 발전소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2

셰페토프카는 철도 노선이 지나가는 작은 도시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계속되면서 러시아 제국 전역에서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917년, 수도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에서 시위와 파업이 일어났고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했다. 이 소식은 철도를 통해 빠르게 퍼져 셰페토프카에도 전해졌다. 도시의 행정권은 멘셰비키와 분트(Бунд)라 불리는 정치 세력이 장악했다.

이 시기 파벨은 발전소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는 같은 또래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운 친구는 세료자 브루자크(Серёжа Брузжак)였다. 또 다른 친구는 클림카(Климка)였다. 세 소년은 틈만 나면 함께 어울려 다니며 도시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해 가을 도시에서는 볼셰비키라는 이름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이 이끄는 혁명 세력이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선에서는 많은 병사들이 탈영해 돌아오고 있었다. 철도역 주변에서는 무장한 병사들과 군대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1918년 봄, 셰페토프카의 권력은 파르티잔이라 불리는 무장 혁명 세력에게 넘어갔다. 그들은 도시를 장악하고 주민들에게 무기를 나누어 주었다. 이 무렵 도시에는 주흐라이(Жухрай)라는 인물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발트 해군의 선원이었던 사람이었다.

소년들에게 무기는 큰 사건이었다. 파벨은 친구가 가지고 있던 소총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티잔들은 도시를 떠났다.

사흘 뒤 셰페토프카에는 독일군이 들어왔다. 독일군은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주민들에게 모든 무기를 즉시 반납하라고 명령했다. 형 아르툠은 집에 있던 소총을 바로 없애 버렸다. 그리고 파벨에게 말했다.

“다시는 집에 무기를 가져오지 마라. 그런 것은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든다.”

한편 주흐라이는 발전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파벨을 만나게 된다. 주흐라이는 파벨에게 보일러 다루는 법을 알려 주었고, 복싱도 가르쳤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발전소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3

소련 배우 이리나 페도토바. 영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한 장면, 토냐 역을 맡았다.

소련 배우 이리나 페도토바. 영화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942)의 한 장면, 토냐 역.

By оператор Борис Монастырский,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파벨의 삶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토냐 투마노바(Тоня Туманова)였다. 토냐는 도시 외곽 숲 근처에 사는 산림 관리인의 딸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파벨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과 달리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토냐는 교양 있고 교육을 받은 소녀였다.

파벨은 숲 근처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몇 번 더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토냐는 파벨의 거칠지만 솔직한 성격에 흥미를 느꼈고 파벨 역시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벨은 자신이 그녀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소년이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파벨은 어머니의 부담을 덜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제재소에서 추가 일을 시작했다. 제재소에서는 거대한 톱이 끊임없이 나무를 자르고 있었고 공기는 톱밥으로 가득했다. 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무거운 통나무를 옮겼다.

이 무렵 철도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파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쟁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노동자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도시를 떠나 파르티잔에 합류하기도 했다.

당시 셰페토프카는 여전히 독일군의 영향 아래 있었다. 독일군은 철도를 통해 군수 물자를 이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철도 노동자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다.

어느 날 형 아르툠과 그의 두 동료가 독일군에게 붙잡혔다. 독일군은 그들에게 기관차를 몰라고 명령했다. 세 사람은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열차가 역에서 충분히 멀어지자 그들은 행동을 시작했다. 먼저 열차를 감시하던 독일군 경비병을 공격해 쓰러뜨렸다. 그리고 기관차의 조종장치를 망가뜨려 열차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 후 세 사람은 추적을 피해 숲으로 달아났다.

4

셰페토프카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했다. 혁명 이후 도시의 권력은 여러 세력 사이에서 계속 바뀌었고 질서는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이 무렵 도시에는 새로운 무장 세력이 들어왔다. 바로 페틀류라 군(петлюровцы)이었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도자 시몬 페틀류라(Симон Петлюра)를 지지하는 군대였다.

페틀류라 군이 마을로 진입하는 상상의 이미지

페틀류라 군이 도시로 들어오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무장한 병사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민들을 위협했고 곳곳에서 약탈이 일어났다. 일부 무장 집단은 민간인의 집을 습격해 물건을 빼앗기도 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리는 무장한 군인들과 떠돌이 무장 집단들로 가득했다. 총성이 들리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파벨도 이러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구타당하기도 했고 무장한 군인들이 주민들을 협박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특히 유대인 주민들을 향한 공격이 잦았다. 유대인 상점과 가정이 공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당했다. 도시 전체가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며 조심스럽게 살아야 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5

셰페토프카의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도시를 장악한 페틀류라 군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특히 경계한 인물은 주흐라이였다. 그는 과거 발트 해군의 선원이었고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혁명가였다.

위험을 느낀 주흐라이는 잠시 몸을 숨기기로 했다. 그는 파벨의 집에 숨어 지내게 되었다. 파벨의 집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이었고 정치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주흐라이는 며칠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동안 그는 파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페틀류라 군은 주흐라이의 행방을 알아내고 그를 체포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그를 끌고 가는 모습을 파벨이 보게 되었다. 파벨은 갑자기 병사에게 달려들어 주흐라이를 붙잡고 있던 병사를 공격했다. 그 사이 주흐라이는 빠르게 달아나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로신스키(Лощинский)였다. 그는 이전부터 파벨과 좋지 않은 관계였다. 로신스키는 곧바로 페틀류라 군에게 달려가 파벨이 주흐라이의 탈출을 도왔다고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틀류라 군이 파벨을 찾아왔다. 그들은 파벨을 체포해 감옥으로 끌고 갔다.

6

페틀류라 군에게 체포된 파벨은 도시의 작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감옥은 좁고 어두웠으며 공기가 탁했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함께 갇혀 있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체포된 사람들도 있었고, 단순히 의심을 받아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파벨에게 감옥은 처음 경험하는 장소였다. 도시에서는 파벨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토냐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감옥에서 수감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행정적인 실수가 일어났다. 혼란 속에서 파벨은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풀려나게 되었다. 감옥에서 나온 파벨은 곧바로 도시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틀류라 군이 실수를 알아차리면 다시 체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곧 토냐의 집으로 향했다. 토냐는 갑자기 나타난 파벨을 보고 놀랐지만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토냐는 부모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파벨을 숨겨 달라고 부탁했다. 토냐의 부모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파벨을 집에 머물게 했다. 파벨은 며칠 동안 그 집에 숨어 지냈다. 그 사이 파벨은 토냐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오래 그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파벨은 다음 날 아침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7

셰페토프카는 여전히 페틀류라 군의 통제 아래 있었다. 도시에서는 폭력과 약탈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유대인 주민들을 향한 공격이 일어났다. 무장한 페틀류라 군과 그들과 함께 움직이던 집단들이 유대인 상점과 가정을 공격했다. 집들이 약탈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폭력을 당했다. 일부 사람들은 거리에서 구타를 당하거나 살해되기도 했다. 도시는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집 안에 머물렀다.

약 일주일 뒤 새로운 군대가 셰페토프카에 들어왔다. 바로 적군(Красная армия)이었다. 적군은 페틀류라 군과 충돌했고 전투 끝에 도시에서 그들을 몰아냈다. 도시는 볼셰비키 세력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 파벨의 친구 세료자는 콤소몰(Комсомол)에 가입했다. 그는 곧 청년 공산주의 조직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파벨도 혁명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결국 적군에 합류했다.

8

적군에 합류한 파벨은 기병 부대의 병사로 전투에 참여했다. 그가 속한 부대는 코토프스키의 이름을 딴 기병 여단이었다. 기병 부대의 생활은 매우 힘들었다. 병사들은 긴 행군을 반복했고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 속에서 생활했다. 식량과 보급품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 시기 군대에서는 전염병이 퍼지고 있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병이 빠르게 번졌다. 파벨은 티푸스에 감염되었다. 그는 고열과 심한 두통으로 고통을 겪었고 한동안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치료를 위해 후방으로 보내졌다.

병에서 회복한 뒤 그는 다시 전투에 참여했다. 그러나 어느 전투에서 파벨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전투 중 파편이 그의 머리를 스쳤고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9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파벨은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는 한동안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파벨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러나 부상의 후유증이 남았다. 머리 오른쪽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었고 시력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한쪽 눈은 결국 실명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토냐가 파벨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파벨은 토냐에게 콤소몰 모임에 함께 가 보자고 제안했다. 토냐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모임에서 토냐는 차가운 분위기를 느꼈다. 일부 콤소몰 구성원들은 그녀를 혁명 운동과 거리가 있는 사람으로 보았다.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이 무렵 파벨은 체카(ЧК)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체카는 반혁명 세력을 감시하고 체포하는 임무를 맡은 조직이었다. 그러나 파벨의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머리 부상 후유증 때문에 심한 두통이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셰페토프카를 떠나 키예프(Киев)로 가게 되었다.

제2부

1

키예프에서 파벨에게 주어진 임무는 중요한 인물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그 인물은 리타 우스티노비치(Рита Устинович)였다. 리타는 지방 공산당 위원회의 대표로 활동하는 혁명가였다. 파벨은 그녀의 경호 임무를 맡게 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일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리타는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파벨은 그녀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혁명 조직의 활동에 계속 참여했다. 키예프에서 그는 조직의 여러 임무를 수행하며 활동을 이어 갔다.

2

내전이 계속되던 시기 키예프에서는 겨울을 앞두고 심각한 난방 문제가 생겼다. 도시에는 장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숲에서는 이미 많은 장작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곳까지 철도가 연결되어 있지 않아 운반이 어려웠다.

도시 지도부는 숲과 도시를 연결하는 협궤 철도를 새로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철도는 장작을 도시로 운반하기 위한 임시 노선이었다. 공사는 세 달 안에 끝내야 했다. 이 작업에는 많은 노동자들과 콤소몰 청년들이 동원되었다. 파벨도 그 작업에 참여했다. 철도 건설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거의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숲 속에서 노반을 만들고 침목과 레일을 놓는 일은 모두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노동자들은 눈과 바람 속에서 작업을 계속했다. 어느 날 강한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때 한 여객 열차가 철도 노선 위에 멈춰 섰다. 선로가 눈에 덮여 기차가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이 내려와 노동자들과 함께 선로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때 파벨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보았다. 바로 토냐였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파벨은 토냐가 이미 부유한 기술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철도 건설 작업은 계속되었다. 혹독한 노동과 추운 날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 파벨도 병에 걸렸다. 그는 티푸스와 폐렴에 동시에 걸려 쓰러졌다. 상태가 매우 위독해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3

주인공의 쇠약해진 모습

티푸스와 폐렴에 걸린 파벨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그의 상태는 매우 위독했다. 고열과 심한 쇠약 때문에 의사들도 그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고향 셰페토프카에는 이미 그가 죽었다는 전보가 전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파벨의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긴 치료와 휴식을 거친 끝에 그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병에서 회복한 뒤 파벨은 형 아르툠 코르차긴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르툠은 결혼을 했고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파벨은 다시 키예프로 돌아가기로 했다. 키예프에서 그는 전기 기술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발전소에서 일했던 경험 덕분에 이 일을 맡게 되었다. 파벨은 노동을 하면서도 혁명 조직의 활동에 계속 참여했다. 그는 여러 회의와 토론에 참석했고 젊은 노동자들과 함께 활동을 이어 갔다.

4

키예프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던 파벨은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폴란드 국경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당시 이 지역에서는 여러 무장 집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일부는 단순한 도적 집단이었고 일부는 반혁명 세력과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파벨은 군사위원(комисса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부대에서 정치 교육을 담당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유지하며 지역의 치안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지역에서는 무장 도적 집단이 마을을 습격하고 교통로를 공격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파벨과 그의 동료들은 이 집단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작전 끝에 그들은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 집단을 제압했다.

5

1924년 혁명 정부의 지도자였던 블라디미르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이 사망했다. 이 소식은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레닌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파벨도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레닌의 사망 소식은 파벨의 형 아르툠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아르툠은 결국 공산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했다.

전국 곳곳에서 레닌의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파벨 역시 혁명 운동에 계속 참여했다.

6

키예프에서 활동하던 파벨은 오랜만에 리타 우스티노비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리타는 이미 결혼을 했고 딸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근황과 혁명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무렵 파벨은 파일로(Файло)라는 사람과 갈등을 겪게 된다. 파일로는 과거 파르티잔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지만 성격이 거칠고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했다. 어느 날 파벨은 파일로가 한 여성을 모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파벨은 그에게 항의했다. 말다툼은 곧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파일로가 파벨에게 달려들자 파벨은 가까이 있던 의자를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파일로는 크게 다쳤다.

이 사건은 당 조직과 법원에 알려졌다. 조사 끝에 파일로는 공산당에서 제명되었다. 파벨 역시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감옥에 보내지지는 않았다. 당 조직은 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그를 요양소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7

요양 치료를 받으며 몸을 회복하려던 파벨은 어느 날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이미 전쟁에서 입은 부상과 질병 때문에 그의 몸은 매우 약해진 상태였다. 이 사고는 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의사들은 파벨에게 더 긴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예브파토리아(Евпатория)로 보내졌다. 이곳은 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 요양과 치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파벨은 그곳에서 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전쟁에서 입은 머리 부상과 티푸스, 폐렴, 그리고 오랜 기간 이어진 노동과 사고까지 겹치면서 그의 몸은 점점 약해졌다.

그럼에도 파벨은 다시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조금만 일을 해도 심한 피로와 통증이 찾아왔다.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에 파벨의 어머니는 그에게 잠시 조용한 곳에서 쉬라고 권했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 알비나 큐참(Альбина Кюцам)의 집에서 지내 보라고 제안했다. 파벨은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8

어머니의 권유로 파벨은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의 친구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타야 큐참(Тая Кюцам)을 만났다. 타야는 알비나 큐참의 딸이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성실한 성격의 젊은 여성이었다. 파벨과 타야는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졌다. 타야는 파벨이 겪어 온 전쟁과 질병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를 멀리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벨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전쟁에서 입은 부상과 질병, 오랜 노동의 영향으로 그의 몸은 점점 약해졌다. 결국 그의 시력은 점점 약해졌고 마침내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되었다. 병은 계속 진행되었고 파벨의 신경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는 점점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결국 전신이 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9

시력을 잃고 몸이 마비된 뒤 파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활동하거나 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전쟁과 노동, 혁명 활동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이제는 스스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파벨은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혁명과 전쟁 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이때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글로 남기겠다는 결심이었다.

10

파벨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을 볼 수 없고 몸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그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글을 받아쓰게 하며 작품을 완성해 나갔다.

원고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문장을 고치고 다시 쓰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마침내 그의 원고는 완성되었다. 그는 그것을 출판사로 보냈다.

많은 날이 지난 뒤, 기다림이 더는 견디기 어려워질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외쳤다. “레닌그라드에서 우편이 왔다!”

전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소설이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출판 작업에 들어간다. 승리를 축하한다.”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된 것이다. 철의 고리는 끊어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 이제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대열로 그리고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끝>

 

 

1935~1936년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가 살며 작품을 집필했던 집 (현재: 박물관)

1935~1936년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가 살며 작품을 집필했던 집 (현재: 박물관)

 모스크바 트베르스카야 거리 14번지.

By Vladimir OKC – Own work,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작품 분석과 평가

니콜라이 알렉세예비치 오스트롭스키(Николай Алексеевич Островский, 1904–1936)의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Как закалялась сталь)는 1930년대 소련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혁명과 내전의 시대 속에서 성장한 한 청년의 삶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동시에 새로운 사회가 요구한 인간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은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파벨 코르차긴(Павел Корчагин)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쫓겨난 뒤 철도역 식당에서 노동을 하며 생활을 이어 간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과 내전이라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그의 삶은 크게 변화한다. 파벨은 혁명 세력과 접촉하며 정치적 의식을 형성하고, 결국 적군에 합류해 전쟁과 혁명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투와 노동, 질병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겪으며 점차 자신의 신념을 확립해 간다.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강철”이라는 비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 형성의 과정을 상징한다. 강철이 높은 열과 압력 속에서 단련되듯이 파벨의 삶 역시 혁명과 전쟁, 그리고 개인적 고통을 통해 단련된다. 작품은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보여 주며,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려 낸다.

이 작품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적인 모델 작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1930년대 소련에서 공식적으로 확립된 문학 이론으로,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라는 역사적 방향 속에서 인간의 발전과 변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학적 원칙 속에서 주인공은 개인적 고뇌를 넘어 집단과 역사 속에서 성장하는 인물로 그려지게 된다.

파벨 코르차긴은 바로 이러한 ‘긍정적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이해된다. 그는 개인적인 안락함이나 행복보다 사회와 혁명의 목표를 우선시하며, 자신의 삶을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의미 있게 만들려는 인물이다. 육체적으로는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 시력과 신체의 자유를 거의 잃게 되지만 그의 정신적 의지는 오히려 더욱 강해진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파벨이 병상에 누운 채 자신의 삶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하는 장면은 이러한 인간 의지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읽힌다.

이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작가 자신의 삶과 작품이 강하게 겹친다는 점이다. 니콜라이 오스트롭스키 역시 내전 이후 심각한 질병으로 시력을 잃고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원고를 직접 쓰지 못하고 구술을 통해 작품을 집필했다. 이러한 작가의 경험은 소설 속 파벨의 마지막 모습과 매우 유사하며, 작품에 강한 자전적 성격을 부여한다.

문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인물의 내면 심리보다는 사건과 행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보인다. 혁명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인물의 성격은 사유나 심리적 갈등을 통해 형성되기보다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개인보다는 집단과 역사적 과정의 의미를 강조하는 당시 소련 문학의 특징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학사에서는 이 소설을 “소련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작품 가운데 하나이면서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이 작품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모델이자 혁명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보여 준 작품으로 높이 평가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오랫동안 소련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히며 강한 영향을 미쳤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 작품이 지나치게 이념적이며 인물이 현실적인 복잡성을 충분히 지니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특히 파벨 코르차긴이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이상화된 ‘모범적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평가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문학적 가치와 이념적 성격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다양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가 20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혁명시대를 살아간 한 세대의 경험을 강하게 담고 있으며, 동시에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이 소설은 단순한 이념 문학을 넘어 인간의 삶과 역사, 그리고 신념의 형성을 다룬 작품으로 계속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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