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안고 있는 모습(AI 생성 이미지)
런던에서 시작된 꿈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1934년 4월 3일, 영국 런던 햄프스테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발레리 제인 모리스-구달(Valerie Jane Morris-Goodall). 아버지 모티머 구달은 사업가이자 모터레이싱 애호가였고, 어머니 바네(Vanne, 본명 마이판위 조셉)는 소설가였다.
어린 제인은 동물과 자연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 그녀가 가장 아꼈던 친구는 아버지가 선물한 침팬지 인형 ‘주빌리(Jubilee)’였다. 동물을 향한 이 순수한 호기심은 책을 넘어 현실의 아프리카로 확장되었고, 제인은 언젠가 그 땅에 가서 야생을 관찰하고 기록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1940년대 영국에서, 그것도 평범한 가정의 딸이 그런 꿈을 갖는 것은 허황되게 들렸다. 경제적 여유도, 뒷받침할 배경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 바네는 제인이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정말 간절히 원하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거라는 믿음을 제인에게 심어주었다.
아프리카로 향한 선택
가족은 전쟁과 이혼을 겪으며 런던을 떠나 해안 도시 보른머스(Bournemouth)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제인은 조랑말, 개, 거북이 등 다양한 동물과 함께 자라며 자연에 대한 애정을 더 깊이 새겼다.
제인은 본머스의 업랜즈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대학 대신 비서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런던에 머물며 도서관, 박물관, 강연을 찾아다녔고, 독학으로 자신만의 지식을 쌓았다.
1957년, 케냐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친구의 초대를 받은 제인은 돈을 모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프리카행 배에 올랐다. 평생 꿈꿔온 순간이 현실이 됐다.
곰베, 침묵을 깨다
곰베 스트림 국립공원에서 두 마리 새끼와 놀고 있는 성체 암컷 침팬지
By Ikiwaner – Own work, GFDL 1.2, wikimedia commons.
케냐에 도착한 제인은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Louis Leakey)를 만났다. 그는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현대 유인원의 행동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제인은 정규 학위도 없었지만, 야생을 향한 집요한 열정과 직관으로 리키의 신뢰를 얻었다.
1960년, 26세의 제인은 탄자니아 ‘곰베 개울’ 지역으로으로 파견됐다. 여성 혼자 아프리카 숲에 들어가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어머니 바네가 제인과 동행했다.
곰베의 숲은 고요했지만 차가웠다. 침팬지들은 사람의 그림자만 봐도 소리 없이 사라졌다. 시간만 흐르고, 연구는 답보상태였다. 자금도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한 마리 침팬지가 경계를 허물었다. 후에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David Greybeard)’로 불리게 된 그는 제인 앞에서 나뭇가지를 이용해 흰개미를 잡아먹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행동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도구 사용’은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학계의 통념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제인의 발견은 곧 세계로 퍼졌고, 그녀는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과학자의 길, 의심을 넘어
곰베에서의 연구는 제인을 국제적인 인물로 만들었지만, 그녀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65년, 제인은 다큐멘터리 감독 휴고 반 라위크(Hugo van Lawick)와 결혼해 아들 그럽을 낳았다. 하지만 연구와 가정을 병행하는 삶은 쉽지 않았고, 두 사람은 결국 이혼했다.
루이스 리키의 추천으로 제인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학위 없이 박사에 도전하는 것은 이례적이었지만, 그녀는 야생에서의 관찰을 토대로 《야생 침팬지의 행동》이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1966년, 박사학위를 받은 제인은 본격적인 과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제인의 연구방식은 비판을 불러왔다. 침팬지에게 번호 대신 이름을 붙이고, 감정을 부여하는 행위는 당시 학계의 금기였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오늘날 야생동물 연구자들은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고, 성격과 감정을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
그녀가 1977년 설립한 제인 구달 연구소(JGI)는 인간과 자연, 동물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국제 단체로 성장했다. 현재 JGI는 26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1986년, 시카고 학술대회에서 제인은 다시 한 번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침팬지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날 이후 제인은 연구실을 떠나, 남은 삶을 침팬지와 숲을 지키는 데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1991년, 제인은 청소년 환경 프로젝트 ‘루츠 앤 슈츠’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자연 보호에 나서도록 돕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다.
멈추지 않는 여정
제인 구달, 2022년 4월 4일 우간다 주재 미국 대사관 방문
By U.S. Mission Uganda, CC BY 2.0, wikimedia commons.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제인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영국 자택의 작은 방을 스튜디오로 꾸미고, ‘버추얼 제인’을 통해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했다. 제인은 자신의 시간이 많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며, 더 빨리,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인은 그간 수십 개의 명예박사 학위와 더불어 대영제국 훈장을 받고 데임(Dame) 칭호를 얻었으며, 2002년부터 UN 평화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인은 기후위기 대응, 동물실험 반대, 윤리적 동물 보호, 공존의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