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성경의 천사와 우리의 이미지 사이
성경을 읽어보면 의외로 천사에게 “깃털 달린 날개 두 개”를 단정적으로 붙여놓은 구절은 많지 않다. 천사는 대개 “사람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말을 건네고, 식사를 함께 하고, 길을 안내한다. 하늘과 땅을 오갈 때도 굳이 날개를 펴고 나는 대신, 야곱의 꿈처럼 사다리를 오르내리거나, 제물의 불길 속으로 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천사는 거의 자동적으로 날개를 단 모습이다. 성경의 문자 묘사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있는 것이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건 신학이라기보다 미술사와 시각 문화의 역사에 가깝다.
초기 기독교 미술 속 날개 없는 천사들

3세기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베 수태고지 벽화의 모사본. 오른쪽 인물이 가브리엘 천사
By anonymous artist,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3세기 로마 지하묘지, 프리실라 카타콤베(Catacomb of Priscilla)에는 가장 이른 시기의 ‘가브리엘’로 추정되는 천사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천사는 우리가 익숙한 천사가 아니다. 날개도 없고, 단지 고위 인물 앞에서 말을 전하는 젊은 사절처럼 서 있다.
이 시기의 기독교 미술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전령”이라는 역할만 강조된 채, 외형은 지상의 고급 관료와 비슷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토가나 튜닉을 닮은 옷, 단정한 자세, 말하는 몸짓 같은 것들이 천사를 구분하는 표지였지, 날개는 아니었다.
이는 주변 문화와의 구분이라는 전략도 반영한다. 로마 세계에는 이미 승리의 여신 니케(Nike)처럼 날개 달린 신적 존재들이 가득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싶었고, 그래서 오히려 날개를 피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천사에게 날개가 붙다
상황이 바뀌는 시점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 건축과 장식이 본격화되는 4세기 후반이다. 이때 만들어진 이른바 “왕자(프린스)의 석관(Prince’s Sarcophagus)”에, 연구자들이 알고 있는 한 가장 이른 시기의 날개 달린 천사가 등장한다. 이 석관은 테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년) 시기로 추정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날개 달린 천사가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 미술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날개 달린 승리의 여신, 시간과 계절, 프시케(Psyche, 영혼)를 형상화한 수많은 이미지가 있었다. 기독교 미술은 이 시각적 어휘를 차용해 기존의 “날개 달린 승리”를 “하늘의 사자”로 재해석했다.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토가를 입은 날개 달린 천사들(432–440)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5세기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Santa Maria Maggiore) 대성당의 모자이크에서는, 이미 날개 달린 천사가 자연스러운 표준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이 시점부터 서구 기독교 미술에서 “천사=날개 달린 존재”라는 공식이 사실상 굳어졌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신학이 부여한 상징적 날개
흥미로운 것은 교부 시대의 설교가 날개를 실제 신체가 아니라 상징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4–5세기 설교가들은 천사들에게 날개가 있는 것은 그들의 본질적 숭고함과 민첩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즉, 날개는 실체가 아니라 시각적 은유에 가깝다. 이 은유가 신학적 언어와 결합하면서 “천사는 날개 달린 영적 존재”라는 상상력이 점점 굳어진 셈이다.
성경 속 천사, 그리고 케루빔·세라핌
여기서 한 가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천사(angel)”라고 부르는 존재와 성경이 말하는 케루빔(cherubim), 세라핌(seraphim)은 완전히 같은 범주가 아니다.

1551년 노브고로드에서 제작된 복음서 표지(오클라드)의 세라핌 그림
By Shakko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 세라핌은 이사야서에서 여러 개의 날개로 얼굴과 발을 가리고 날아다니는 존재로 묘사된다. 에제키엘은 짐승의 얼굴과 날개, 바퀴에 눈이 가득한 환상적 존재들을 본다.
- 케루빔은 에제키엘서에서 네 개의 얼굴(사자·황소·독수리·사람)과 네 개의 날개를 가진 존재로, 신의 보좌를 지탱하는 영적 수호자로 등장한다.
이들은 오늘날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지는 부드러운 수호천사와는 매우 다른, 기괴하고 낯선 하늘 존재들이다. 중세 이후 미술은 이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천상 군대’ 안에 층위별로 배치하면서, 날개의 개수와 색, 위치로 위계를 표현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하얀 옷에 두 날개를 단 천사”는 이 복잡한 전통 속에서 가장 단순화된 도상에 해당한다.
결론: 르네상스 이후, 인간을 닮아가는 천사

예수의 부활(1499–1502년경)
By Raphael,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천사는 점점 인간의 감정과 미학을 투사하는 화면이 된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천사의 날개에 극적인 색과 질감을 입히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인간적 표정을 부여했다. 이후 바로크와 근대 미술에서는 천사가 슬픔, 위로, 승리, 경외 같은 감정의 상징으로 쓰이며, 날개는 그 감정을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이 과정에서 초기 기독교 미술의 “날개 없는 전령”은 점차 잊혀졌다. 대신 날개는 천사를 인식하는 가장 직관적인 표지가 되었다. 심지어 현대 대중문화에서는 날개가 없으면 천사인지조차 알아보기 어렵다고 느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