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인류 사회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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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인류문명의 갈림길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한 발전을 설명하려는 방대한 시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역사의 결정적인 갈림길을 만들어낸 요인이 무엇인지 묻는다. 왜 어떤 민족은 제국을 세우고 다른 민족을 정복했는가? 왜 어떤 사회는 총과 쇠를 앞세워 세계를 지배했지만, 다른 사회는 그 대상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오랫동안 인종적 우열이나 문화적 차이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설명을 거부하며, 인류사의 차이는 인간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환경과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의식과 출발점
책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잉카 제국을 무너뜨린 사건에서 출발한다. 불과 수백 명의 유럽인이 수만의 잉카 군대를 제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총과 갑옷 때문일까? 아니면 잉카가 유럽보다 열등했기 때문일까?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런 질문에 답하며, 유럽이 가진 ‘우위’는 역사 초기에 쌓인 환경적 차이의 축적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농업의 기원과 불평등의 출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농업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왔으나, 특정 지역에서 농업이 일찍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는 밀과 보리 같은 알곡 작물과 염소, 양, 소 같은 가축화하기 좋은 동물을 보유했다.
이 지역 사람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농경을 시작했고, 잉여 식량을 확보했다. 잉여는 인구 증가를 가능케 했고, 사회 분화와 도시 형성,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반면 작물화나 가축화가 어려운 지역에서는 농업의 발전이 늦어졌다. 이것이 최초의 불평등을 만들어낸 결정적 요인이었다.
대륙의 지리와 확산
《총, 균, 쇠: 인류 사회의 운명》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대륙 축의 방향
By Espíritu nocturno – Own work, wikimedia commons.
대륙의 지리적 조건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기후대와 일조량이 유사하게 이어졌다. 따라서 한 지역에서 개발된 작물이나 가축,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비교적 쉽게 확산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기후 차이가 극심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작물을 옮기면 적도 기후나 사막, 열대우림을 만나 전파가 막혔다. 이런 차이는 기술과 농업 지식의 확산 속도를 극적으로 달리 만들었다.
총과 쇠의 상징
잉여 식량을 바탕으로 사회가 커지면서 국가가 형성되고, 계급 분화와 전문 직업이 생겼다. 그 결과 군사 기술과 금속 가공 기술이 발전했다. 유럽이 보유한 철기와 화약 무기는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 사회가 상대할 수 없는 압도적 힘이었다. 따라서 “총과 쇠”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잉여 자원과 기술 축적의 산물을 상징한다.
균의 위력
그러나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정복의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병원균을 꼽는다. 유라시아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가축과 함께 살아오면서 수많은 전염병에 노출되었고, 그 과정에서 집단 면역을 형성했다.
천연두와 홍역 같은 질병은 유럽인에게는 이미 익숙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피사로의 군대가 잉카 제국을 무너뜨리기 전에, 병원균이 이미 수많은 원주민 사회를 파괴했다. 이렇게 “균”은 총과 쇠보다 더 무서운 무기였다.
결론: 환경의 힘
《총, 균, 쇠》의 결론은 분명하다. 인류사의 불평등은 인종이나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농업의 시작 시기, 가축과 작물의 분포, 대륙의 축 방향, 환경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어떤 사회는 우연히 유리한 환경을 차지해 발전을 앞당길 수 있었고, 다른 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를 통해 “문명의 차이를 인간 자체의 우열로 설명하는 것은 잘못”임을 보여주며, 그 대신 환경과 지리적 조건을 중시하는 설명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접근은 흔히 ‘환경결정론적’이라고 불린다. 이 책은 방대한 사례와 논증을 통해, 우리가 목격하는 세계의 불평등이 결국 환경이 만든 역사적 결과임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