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나선형의 혁신
맨해튼 5번가의 북쪽 끝, 센트럴파크를 마주한 자리에 우뚝 선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건축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대표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16년에 걸쳐 완성한 이 건물은, 안으로 말아 들어가는 나선형 구조 하나로 20세기 미술관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나선형 경사로를 따라 위로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는 이 경험은, 단절된 방들 사이를 옮겨 다니던 전통적 관람 방식을 근본부터 재해석한 것이다. 중앙의 천창에서 내려오는 자연광은 회화와 조각, 그리고 벽 자체에까지 생기를 불어넣는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층 구조 (By Alex Proimos from Sydney, CC BY 2.0, wikimedia commons)
수집가의 의지, 예술의 방향을 바꾸다
이 공간이 처음부터 이토록 급진적인 실험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재벌가 출신의 수집가 솔로몬 R.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은 1890년대에 구(舊) 대가들의 작품을 모으던 전통적 수집가였다. 그러나 독일계 예술가 힐라 폰 레바이(Hilla von Rebay)를 만나면서 그의 취향은 비구상 회화, 즉 형태와 대상을 벗어난 새로운 예술로 급격히 이동했다.
이들이 함께 꿈꾼 것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추상 예술의 흐름 자체를 경험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라이트가 설계에 착수한 1943년부터 완공된 1959년까지, 수많은 난관이 이 건축을 늦췄다. 자금 문제, 뉴욕시와의 갈등, 그리고 설계자의 완고함. 결국 라이트는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구겐하임 역시 1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떴다.
중앙의 유리 천창을 통해 자연광이 내부로 스며든다. (2015년 1월)
By Gabriel Fernandes from Brasil. CC BY-SA 2.0, wikimedia commons.
현대주의를 위한 기념비
하지만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1959년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닌, 현대주의 그 자체에 바치는 기념비가 되었다. 현대 미술을 단순히 걸어놓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가 그 속을 함께 흐르도록 만든 구조. 그 자체가 새로운 미술 감상의 형식이었다.
이후 1992년의 보수공사는 라이트의 원안을 보존하며 현대적 시설을 더했고, 2019년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여덟 건축물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보는 건물에서, 걷는 예술로
구겐하임 미술관은 ‘보는 예술’의 집이라기보다는 ‘걷는 예술’ 그 자체에 가깝다. 나선형으로 걸으며 시간과 예술의 진화를 따라 함께 상승하는 느낌은 다른 어떤 미술관에서도 얻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이다. 뉴욕을 여행한다면 작품만큼이나 건물 자체가 예술이 되는 이 공간을 절대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