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검투사(Gladiatrix), 잊힌 전사의 초상

여성 검투사가 Sica(짧은 곡검)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

여성 검투사가 Sica(짧은 곡검)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함부르크 박물관)

By Anonyme (IIIe siècle ap J.-C.),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검투사는 모두 남자였다”는 말은 진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로마의 경기장에는 드물지만 무기를 든 여성 전사들, 곧 글라디아트리체스(gladiatrices)도 존재했다. 그들의 존재는 문학과 법률, 그리고 유물이 남긴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문헌으로 본 여성 검투사의 존재

고대 로마의 문인들은 여러 작품에서 여성 검투사의 흔적을 남겼다.

  • 유베날리스(Juvenal)는 『풍자시집(Satire VI)』에서 멧돼지를 창으로 사냥하는 메비아(Mevia)를 묘사한다.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경기장(arena)에서 싸우는 여성을 비판적으로 그린 대목이다.
  • 페트로니우스(Petronius)의 『사티리콘(Satyricon)』에는 전차 위에서 싸우는 여성 전사가 등장한다. 이는 당시 로마의 공연적 전투(ludi)에 여성 참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 또한 카시우스 디오(Cassius Dio)는 『로마사』에서 네로 황제의 공연에 남녀 모두, 심지어 원로원 계급의 여성들이 등장했다고 기록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헌이 남긴 조각들은 여성 검투사가 단순한 상상 속 인물이 아닌 실제 존재했던 사회적 현상임을 말해준다.

법령이 증명한 실존, 기원후 11년의 금지령

기원후 11년, 로마 원로원은 “20세 미만의 자유민 여성은 경기장에 출전할 수 없다”는 법령을 제정했다. 이 법은 단순한 예외 조항이 아니다. 금지령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여성 검투사가 실제로 활동했음을 뒷받침한다.

이 시기 로마 사회에서는 여성이 공적 무대에 서는 것이 흔치 않았기에 이 법은 도덕적 경계선을 설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즉, 여성의 출전을 막으려는 노력은 이미 참여가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한 규제였다.

눈으로 확인된 증거, 알리카르나소스의 대리석 부조

알리카르나소스에서 발견된 ‘아마존’과 ‘아킬리아’ 두 여전사의 부조

알리카르나소스에서 발견된 ‘아마존’과 ‘아킬리아’ 두 여전사의 부조.

By en:User:Xastic,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문헌을 넘어, 유물도 여성 검투사의 존재를 증언한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에 소장된 기원후 1~2세기경 알리카르나소스(Alicarnasso) 대리석 부조에는 두 명의 여성 검투사, ‘아마존(Amazon)’과 ‘아킬리아(Achillia)’가 새겨져 있다.

그들은 방패와 갑옷을 갖춘 채 서로 마주서 있으며, 승부를 가리지 않은 채 공동 승리(missio)를 받은 장면으로 추정된다. 이 부조는 여성이 단순한 공연자가 아니라, 실제 전투에 참여한 전사였음을 보여주는 시각적 증거다.

금지 이후에도 계속된 전투, 세베루스의 시대

세베루스 황제(Septimius Severus, 146~211)는 기원후 200년경 모든 여성이 경기장 출전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이 조치 이후에도 여성 검투사의 기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계속 싸운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여성은 법적으로 아버지나 남편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레나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제약을 넘어서는 행위, 즉 독립과 자율성의 상징이었다. 또한 경기 참여는 명성과 경제적 보상을 제공했기에 일부 여성에게는 현실적 선택이기도 했다.

잊힌 존재, 남겨진 의미

여성 검투사는 로마 사회에서도 드문 예외였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금지와 제약 속에서도 싸움을 택한 여성들, 그리고 역사의 변두리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긴 전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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