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 ᅳ 인류 최초의 영웅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

새롭게 발견된 구(舊)바빌로니아 시대의 길가메시 서사시 제5서판

By Osama Shukir Muhammed Amin ,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길가메시 서사시의 출현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문명이 태동한 땅이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자리한 도시국가들은 풍요로운 농업 생산을 기반으로 발전했으며, 그 안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최초의 문학 작품이 탄생했다. 길가메시(Gilgamesh) 서사시는 기원전 2100년에서 16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바빌로니아에서 소아시아까지 전승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텍스트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의 니네베 도서관에서 발견된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12장의 설형문자 점토판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오래된 수메르어 단편과 구(舊)바빌로니아 판본도 존재해, 이 서사시가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작품임을 보여준다.

반신반인의 왕, 길가메시

우룩(Uruk)의 왕 길가메시는 삼분의 이는 신이고 나머지는 인간으로 전해진다. 힘과 지혜를 겸비했지만 폭군으로 군림해 백성들을 괴롭혔고, 신들은 여신 아루루에게 그와 맞설 자를 만들게 했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야생의 인간 엔키두(Enkidu)였다. 동물과 함께 살던 그는 길가메시와 맞붙었으나 승부를 내지 못하고, 결국 서로를 인정해 친구가 된다.

길가메시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자 했다. 그는 신성한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쓰러뜨려 업적을 세우려 했고, 엔키두는 처음에는 만류했으나 끝내 동행한다. 두 사람은 긴 여정 끝에 태양신 샤마시의 도움으로 훔바바를 물리치고 삼나무를 베어 돌아와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곧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청혼했고, 그는 그녀의 과거를 이유로 거절한다. 분노한 여신은 하늘의 황소를 내려보냈으나 두 영웅은 그것마저 쓰러뜨린다. 신들은 이를 불경으로 여겨 두 사람 중 하나를 죽이기로 했고, 그 화살은 엔키두에게 향한다. 병에 걸려 쇠약해진 그는 음울한 저승의 꿈을 꾸며 길가메시 곁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죽음은 길가메시에게 가장 큰 상실이었다.

불멸을 향한 여정과 좌절

엔키두의 죽음은 서사시의 전환점이 된다. 처음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인간적 고통을 깊이 체험한 길가메시는 불멸을 찾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났다. 그의 발걸음은 마침내 죽음의 강을 건너,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신들로부터 불멸을 얻은 조상 우트나피쉬팀에게 이르게 된다.

영생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간청하는 길가메시에게 우트나피쉬팀은 여섯 날과 일곱 밤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불멸을 얻을 수 있으니 견뎌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끝내 이를 버티지 못했다. 대신 우트나피쉬팀은 바다 깊은 곳에 있는 회춘의 식물을 알려주었고, 길가메시는 직접 잠수해 그 식물을 손에 넣는다.

하지만 귀환길에 한 뱀이 그 식물을 빼앗아 먹어버렸고, 길가메시는 다시 한 번 좌절한다. 이 장면은 불멸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비록 신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삼분의 일은 인간이었기에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 서판과 운명에 대한 자각

열두 번째 마지막 서판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엔키두가 저승에 내려가 붙잡히는 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길가메시는 친구를 되찾고자 신들에게 간구하지만 대부분 외면하고, 다만 지혜의 신 엔키가 그의 기도를 들어주어 땅에 틈을 열어 준다. 그 틈을 통해 엔키두가 잠시 세상으로 돌아와 길가메시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저승의 음울한 모습을 묘사하며, 죽은 자들이 먼지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감을 전한다.

이 장면은 앞선 서사의 직접적 결말과는 어긋나는 삽화처럼 보이나,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사후관을 드러내는 중요한 대목이다. 길가메시는 이로써 인간에게 불멸은 주어지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하고, 삶의 덧없음과 운명의 불가피함을 더욱 깊이 자각한다. 그 결과 그는 단순히 신과 겨루는 영웅을 넘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영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역사적 길가메시와 신화적 엔키두

길가베시_조각상

길가메시 조각상(왼쪽)과 수호신 라마수를 합성한 이미지

By Kadumago – Own work, CC BY 4.0, wikimedia commons.

길가메시는 신화 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역사 속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기원전 27세기 무렵 제2 초기왕조 시대 말기에 우룩을 다스린 왕으로, 수메르 왕명록과 신전 비문에 이름이 남아 있다. 그는 당대 가장 강력한 통치자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되며, 생전에 이미 신격화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반면 엔키두는 역사적 실체가 없는 순수한 신화적 존재이다. 그의 이름은 수메르의 지혜와 창조의 신 엔키와 관련되며, ‘엔키가 창조한 자’ 혹은 ‘좋은 땅의 사람’으로 풀이된다. 이는 그가 동물과 함께 야생에서 살아가는 원초적 인간상을 상징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서사시가 실제 인물과 신화적 상징을 교차시켜 만들어졌음을 드러낸다.

성경과의 평행선

길가메시 서사시는 구약성서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우트나피쉬팀의 대홍수 이야기는 창세기 6–9장의 노아 홍수와 거의 같은 구조를 갖고 있으며,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우정은 사무엘서에 기록된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고대 이스라엘 전통에 영향을 미쳤고, 실제로 성경 속에서 우룩은 ‘에렉(Erech)’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길가메시의 역사적 위치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영웅 이야기이자, 인간이 스스로의 유한성과 불멸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이 서사시가 중요한 까닭은 단순히 신화적 모험담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고대 사회가 신의 질서에 대한 절대적 복종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길가메시의 모험은 바로 이러한 전환을 상징한다. 그는 불멸을 추구하며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했으나, 끝내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와 운명을 이해하려는 첫 시도이자, 동시에 그것이 지닌 한계를 드러내는 원형적 서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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