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무심코 끄적이는 낙서
회의를 듣거나 전화를 하는 동안 종이에 의미 없는 선이나 동그라미를 그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업 시간 공책 가장자리나 메모지에 자신도 모르게 낙서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은 이런 행동을 집중하지 못해서 생기는 버릇이나 지루함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는 낙서가 오히려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조롭고 반복적인 환경에서는 낙서가 예상보다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낙서는 왜 하게 될까?
낙서(doodling)는 특별한 목적 없이 선이나 도형, 간단한 그림을 끄적이는 행동을 말한다. 오랫동안 낙서는 산만함이나 지루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사람의 뇌는 지나치게 단조로운 상황이 계속되면 쉽게 딴생각에 빠지거나 멍해질 수 있다. 이때 손으로 단순한 낙서를 하면 남아 있는 주의 자원(spare attentional resources)이 활용되어 주의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즉, 낙서는 집중을 방해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지루함 속에서도 적절한 각성 수준을 유지하려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연구에서 나온 결과
이 가설을 가장 널리 알린 연구는 영국 플리머스대학교 심리학자 재키 안드레이드(Jackie Andrade)가 2009년에 발표한 실험이다. 연구 참가자들은 다소 지루한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사람과 장소의 이름을 기억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이 가운데 절반은 종이에 인쇄된 작은 도형을 단순히 채우는 정도의 낙서를 했고, 나머지 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낙서를 한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약 29% 더 많은 정보를 기억했다. 연구자는 단순한 낙서가 주의를 분산시키기보다 딴생각을 줄이고 과제에 대한 집중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연구는 참가자가 40명으로 많지 않았고, 비교적 단순한 과제를 대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결론으로 보기는 어렵다.
낙서와 그림 그리기는 다르다
한편, 낙서와는 별개로 교육심리학에서는 그림을 활용한 학습 효과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연구에서 말하는 낙서(doodling)는 목적 없이 선이나 도형을 끄적이는 행동이다. 반면 학습 내용을 그림이나 도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그림 그리기(drawing)에 가깝다.
교육심리학 연구에서는 학습 내용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면 글만 읽거나 반복해서 쓰는 것보다 기억과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캐나다 워털루대학교 연구에서는 학습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참가자들이 단순히 글로 적은 참가자보다 더 높은 기억력을 보였다.
세포 구조를 직접 그리거나 역사적 사건의 흐름을 도식화하는 것처럼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은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낙서와 학습을 위한 그림 그리기는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목적과 효과는 서로 다르다.
마무리하며
현재까지의 연구를 종합하면, 낙서는 지루하고 반복적인 상황에서 주의를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복잡한 계산이나 창의적인 문제 해결처럼 많은 주의력을 요구하는 과제에서는 오히려 집중을 방해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람마다 주의력과 인지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낙서의 효과 역시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낙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