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변의 신발들, 부다페스트 유대인 학살의 기억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신발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 산책로 위의 신발들. (By kallerna,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화살십자당 정권 아래

1944년 10월, 나치 독일은 헝가리를 점령하고 친나치 성향의 페렌츠 살러시(Ferenc Szálasi)를 총리 겸 국가원수로 세웠다. 그가 이끄는 화살십자당(Nyilaskeresztes Párt) 정권은 불과 몇 달간(1944년 10월~1945년 3월) 지속되었지만, 이 짧은 시기 동안 수천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살러시 정권은 독일의 홀로코스트 정책을 적극 따랐다. 강제수용소 이송은 물론 직접적인 총살과 즉결 처형이 대규모로 자행되었다. 이 중 많은 이들이 바로 다뉴브 강변에서 생을 마감했다.

강을 배경으로 총구를 향해

희생자들은 다뉴브 강변에 일렬로 세워졌다. 등은 강을 향하고, 얼굴은 사형 집행인을 바라보도록 했다. 발포와 함께 시신은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당시 다뉴브 강은 너무나 많은 유대인의 주검을 삼켰고, 사람들은 이 강을 “유대인의 공동묘지”라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러 사람을 한 줄로 묶은 뒤, 단 한 명에게만 총을 쏘는 방식도 있었다. 사살된 한 사람이 강물로 떨어지며 나머지를 함께 끌고 들어가 익사하게 만드는 잔혹한 방식이었다. 차가운 겨울 강물은 죽음을 더 빨리, 더 확실하게 이끌었다.

희생자들은 총살 전에 반드시 신발을 벗도록 강요받았다. 당시 신발은 귀중한 물품이었고, 학살자들은 죽은 이들의 신발을 다시 회수해 사용할 수 있다고 여겼다. 시신은 강물을 따라 떠내려갔고, 남겨진 것은 신발뿐이었다.

기억을 위한 조형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 다뉴브 강변에 놓인 60켤레의 철제 신발로 다시 되살아났다. 이 기념물은 2005년, 헝가리 영화감독 칸 토가이(Can Togay)와 조각가 가율라 파우어(Gyula Pauer)에 의해 조성되었다.

남녀노소, 부유층과 노동자,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철제 신발이 줄지어 놓여 있다. 황량하게 버려진 이 신발들은 희생자들의 무고한 부재 그 자체를 증언하고 있다.

침묵하는 강, 침묵하지 않는 역사

이 기념물은 부다페스트를 찾는 이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왜 여기에 신발이 놓여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는 순간, 누구든 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다뉴브 강변의 신발들은 단지 아픈 과거를 추모하기 위한 조형물이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역사적 과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다. 기억은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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