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트의 아이들』(Дети Арбата), 줄거리로 다시 읽기

Table of Contents

제1부

 

아르바트에 사는 청년들의 밝은 이미지

1933년 겨울, 모스크바 아르바트.

혁명과 함께 성장한 젊은이들은 이제 학교를 떠나 저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우정을 쌓아 온 사샤 판크라토프(Саша Панкратов), 막심 코스틴(Максим Костин), 니나 이바노바(Нина Иванова), 레나 부댜기나(Лена Будягина), 그리고 유라 샤로크(Юра Шарок)도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앞으로 걸어갈 길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사샤는 엘리베이터 관리인의 아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콤소몰 세포의 서기를 맡았고, 혁명이 약속한 새로운 사회를 누구보다 굳게 믿었다. 그는 당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삶 역시 그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막심은 보병학교를 졸업할 날을 앞두고 있었고, 니나는 교사가 되었으며, 레나는 번역가를 꿈꾸고 있었다. 혁명 이전부터 볼셰비키로 활동한 외교관 부댜긴(Будягин)의 딸인 레나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미래를 준비했다.

하지만 유라 샤로크는 달랐다. 재단사의 아들인 그는 신념보다 현실을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권력은 믿는 대상이 아니라 이용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만 알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친구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친구들의 모임에는 문학과 연극을 사랑하는 바딤 마라세비치(Вадим Марасевич), 니나의 여동생 바랴(Варя), 바딤의 여동생 비카 마라세비치(Вика Марасевич)도 함께했다.

1934년 새해를 앞둔 마지막 밤,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이야기한다. 사랑, 일, 새로운 삶…. 누구도 자신의 청춘이 그렇게 빨리 끝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먼저 운명이 뒤바뀐 사람은 사샤였다.

혁명 기념일을 맞아 대학에서 제작한 벽신문에 실린 풍자시 몇 편이 문제 되면서 그는 대학과 콤소몰에서 제명된다. 사샤는 자신의 결백을 믿었다. 중앙통제위원회(ЦКК)에 호소했고, 긴 심사 끝에 복권된다. 그는 당이 결국 진실을 밝혀 주었다고 믿으며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어느 날 새벽 두 시, 집 안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붉은 군대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사샤는 부티르카 감옥(Бутырская тюрьма)으로 연행된다.

첫 심문에서 수사관 댜코프(Дьяков)는 뜻밖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합니까?” 사샤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평생 당을 믿었고, 혁명을 의심한 적도 없었다.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외삼촌 마르크 랴자노프(Марк Рязанов)의 존재였다. 소련 최고의 야금학자로 손꼽히는 그는 조카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부댜긴 역시 사건의 심각성을 직감한다. 국가정치보안국(ОГПУ)이 사샤가 누구의 조카인지 모를 리 없었다.

국가정치보안국의 간부 베레진(Березин)도 사샤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샤가 반혁명분자가 아니라 성실하고 정직한 청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문제는 사샤 개인의 결백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의 사건은 대학을 넘어 중공업 인민위원부까지 이어지고 있었고, 그 배후에는 스탈린과 오르조니키제(Орджоникидзе)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권력의 긴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탈린은 오래된 혁명 동지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혁명은 끝났고, 이제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싸운 전우가 아니라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실행할 사람들이었다. 반대파를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는 오르조니키제의 태도와 키로프(Киров)와의 가까운 관계는 그의 의심을 더욱 키우고 있었다.

얼마 뒤 사샤의 어머니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Софья Александровна)는 부티르카 감옥으로 면회를 오라는 통보를 받는다. 따뜻한 옷과 돈, 먹을 것을 가져오라는 말은 이미 사샤의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동안 바랴는 소피야를 곁에서 도우며 식료품을 구하고 면회 물품을 챙겨 주었다. 그러나 막심을 비롯한 사관생도들을 극동으로 배웅하기 위해 나간 기차역에서 그녀는 뜻밖의 광경과 마주한다. 호송병 사이를 걸어가는 사샤였다. 창백한 얼굴, 덥수룩한 수염, 여행가방 하나와 배낭이 그의 전부였다. 새해를 함께 맞았던 친구는 어느새 죄수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샤는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른다.

제2부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느 사샤

사샤가 어머니에게 처음 보낸 소식은 칸스크 관구의 보고차니 마을에서 온 짧은 전보였다. 그것은 무사하다는 안부인 동시에, 이제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인사이기도 했다.

철도는 칸스크에서 끝났다. 그 뒤부터는 끝없이 이어지는 시베리아의 길이 시작되었다. 유형수들은 숲과 강을 지나며 걸어서 이동했고, 그 길 끝에서 저마다 다른 마을로 흩어졌다.

길에서 만난 보리스 솔로베이치크(Борис Соловейчик)는 시베리아에서는 세상 모든 종류의 정치범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원, 아나키스트, 트로츠키주의자, 민족주의자까지 한곳에 모여 있었지만, 사샤는 곧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시대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샤의 유형지는 케즈마(Кежма)에서 앙가라강 상류 쪽으로 떨어진 모즈고바 마을이었다. 그는 마을 주민의 집에 방을 얻어 생활을 시작한다. 공과대학에서 배운 기술은 그곳에서 유일한 재산이었다. 농기계를 고치고 고장 난 기계를 손보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갔고, 품삯 대신 사워크림이나 식료품을 받는 날도 많았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고단했지만, 적어도 스스로 일하며 살아간다는 자존심만은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마저 오래가지는 않았다.

콜호스의 공동 분리기는 이미 수명을 다한 낡은 기계였다. 사샤는 여러 차례 주임에게 나사산을 새로 깎아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기계가 완전히 망가지자 주임은 모든 책임을 사샤에게 떠넘긴다. 사람들 앞에서 그가 일부러 기계를 파괴했다고 몰아세우고, 사샤 역시 끝내 참지 못하고 맞선다.

그 일로 그는 NKVD 담당관 알페로프(Алферов) 앞에 서게 된다. 알페로프는 기계가 낡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샤를 구해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파괴공작이라는 혐의가 씌워지면 십 년형도 가능하고, 콜호스 지도부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죄목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샤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이곳에서는 진실보다 권력이 앞섰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만들기로 결정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세상이었다.

체포된 직후까지만 해도 그는 언젠가는 결백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은 당을 배신한 적이 없었고, 당 역시 끝내 진실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형지에서 보낸 시간은 그 믿음을 조금씩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굴복하지는 않았다. 모욕을 당하면 맞서고,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스스로를 잃지 않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싸움도 시작되고 있었다. 혁명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현실에서 혁명의 이름은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만 반복되고 있었다. 이상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 교사 누르지다(Нуржида)는 사샤를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그녀는 유형이 끝난 뒤 두 사람이 혼인 신고를 하고, 사샤가 자신의 성을 따른다면 과거를 지운 새로운 여권으로 다시 살아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사샤는 오래도록 대답하지 못한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는 자유를 잃을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함께 유형된 한 노정치범은 그런 사샤에게 조용히 말한다. 산산조각 난 신념을 억지로 이어 붙여서는 안 된다. 예전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든지, 아니면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든지, 결국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한편 모스크바에서는 바랴의 삶도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었다. 비카 마라세비치(Вика Марасевич)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녀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한다. 메트로폴과 사보이, 나치오날 같은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외국의 유행과 화려한 사교 생활은 공동주택에서 살아온 그녀에게 또 다른 모스크바를 보여 준다.

그곳에서 바랴는 케르치(Керчь) 출신의 유명한 당구 선수 코스탸(Костя)를 만난다. 그는 자유롭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바랴가 평생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듣자 망설임 없이 함께 크림반도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바랴는 그의 손을 잡는다.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또 한 번 크게 흔들어 놓으리라는 사실을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제3부

 

키로프의 암상을 상징하는 그림

모스크바에 남은 사람들의 삶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라 샤로크(Юра Шарок)는 검찰청에서 일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출세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학생 시절부터 신념보다 현실을 선택했던 그는 새로운 체제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본능처럼 익혀 간다.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만 알면 된다는 그의 생각은 시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 무렵 국가정치보안국의 간부 베레진(Березин)은 샤로크에게 NKVD 고등학교에 들어가 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샤로크는 이미 자포로제츠(Запорожец)의 추천을 받아 레닌그라드 NKVD 조직으로 옮기기로 했다며 제안을 거절한다. 그 말을 들은 베레진은 마음속 불안이 더욱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레닌그라드에서 무언가가 준비되고 있었다. 스탈린은 오래전부터 레닌그라드의 분위기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는 키로프(Киров)에게 지노비예프 계열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하게 추진하라고 요구했지만, 키로프는 끝내 무차별적인 숙청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자포로제츠에게는 그런 키로프를 움직일 만큼 결정적인 사건이 필요했다. 단순한 파괴공작이나 폭발 사고로는 부족했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 충격적인 사건만이 상황을 바꿀 수 있었다.

베레진은 문득 오래전 차리친에서 스탈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사람이 없으면 문제도 없다.” 그 말은 세월이 흘러도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저녁 베레진은 처음으로 부댜긴(Будягин)을 찾아간다. 사샤의 사건과 최근 정세를 이야기하던 끝에 그는 자포로제츠가 극비리에 레닌그라드에서 자기 사람들을 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심한 듯 전한다. 부댜긴은 그 말의 의미를 즉시 알아차리고 다음 날 오르조니키제(Орджоникидзе)에게 이를 알린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것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는 끝내 예상하지 못한다.

한편 바랴와 코스탸의 관계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자유롭고 당당해 보였던 코스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 그는 주민등록 문제 때문에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결혼일 뿐이라고 둘러댔지만, 바랴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도박을 끊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큰돈을 손에 넣었다가도 다음 날이면 모두 잃어버리곤 했다. 그의 삶은 늘 한판 승부의 연속이었고, 바랴는 자신마저 그 도박 같은 인생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관계를 끝낸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스크바 호텔 설계국에 제도사로 취직한 바랴는 다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길은 사샤의 어머니 소피야 알렉산드로브나(Софья Александровна)의 집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함께 사샤의 편지를 기다리고, 그의 소식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소피야가 편지를 보낼 때마다 바랴는 끝에 짧은 추신을 덧붙인다. 몇 줄에 불과한 글이었지만, 사샤에게는 그 어떤 위로보다 큰 힘이 된다. 그는 편지를 읽을 때마다 모스크바의 거리와 친구들을 떠올리고, 무엇보다 바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어느새 사랑으로 깊어졌음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유형지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1934년 12월 1일. 레닌그라드에서 세르게이 키로프(Киров)가 암살되었다. 사건의 진상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예감을 품는다.

이제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사샤도 그것을 직감한다. 이미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세상을 경험했지만, 앞으로 시작될 것은 그것보다 훨씬 거대한 공포였다.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고, 누구도 의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혁명을 함께했던 동지들마저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끝없는 설원을 바라보며 사샤는 모스크바에 남겨 둔 친구들을 떠올린다. 한때 같은 교실에서 미래를 꿈꾸던 젊은이들은 이제 서로 다른 운명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자신들도 미처 알지 못한 채 거대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르바트의 아이들 마지막 텍스트

 

아나톨리 나우모비치 리바코프(Анатолий Наумович Рыбаков, 1911~1998)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