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베누토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

벤베누토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

벤베누토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 1545–1554

By Dimitris Kamaras from Athens, Greece, CC BY 2.0, wikimedia commons.

광장 회랑의 페르세우스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의 회랑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에 서 있는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Perseus with the Head of Medusa)는 단순한 신화 조각이 아니다. 이 작품은 기술의 과시이자 권력의 상징이며, 무엇보다도 한 예술가가 자기 자신을 세상 앞에 세운 선언문에 가깝다. 이 청동 조각을 만든 인물은 르네상스의 문제적 천재,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다.

문제적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

첼리니(1500–1571)는 조각가이면서 금세공가였고, 동시에 자신의 삶을 거침없이 기록한 자서전 작가였다. 그는 미켈란젤로 이후 세대에 속하지만, 겸손한 장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폭력 사건, 결투, 투옥, 권력자들과의 충돌이 그의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스스로를 천재로 인식했고, 그 확신을 글과 작품을 통해 분명히 드러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대표작인 〈페르세우스〉에 그대로 반영된다. 이 조각은 신화를 빌려 말하지만, 실제로는 첼리니 자신과 그가 살아가던 권력의 질서를 노출한다.

왜 ‘페르세우스’였는가

작품의 주제인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처단한 영웅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단순한 신화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이 조각은 메디치 가문의 권력 아래 제작되었고, 피렌체의 공공 공간에 세워질 것을 전제로 했다. 즉, 신화는 정치적 언어였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선 페르세우스는 무질서를 제거한 지배자의 형상이다. 공화정의 기억 위에 군주적 권력이 자리 잡았음을 시각적으로 선언하는 이미지다. 첼리니는 이 상징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거기에 자신의 야심을 과잉으로 덧붙였다. 그는 단지 명령을 이행하는 장인이 아니라, 권력의 무대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예술가였다.

장소가 작품을 완성한다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

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

By Francesco Bini – Own work,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이 조각이 놓인 로자 데이 란치는 피렌체의 핵심적인 정치 공간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도나텔로의 조각들이 주변에 배치된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에 작품을 세운다는 것은 곧 선배 거장들과의 비교를 감수하겠다는 뜻이었다.

첼리니는 그 경쟁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가장 위험한 선택을 했다. 대형 청동 조각이라는, 실패할 경우 모든 것을 잃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청동 주조라는 위험한 선택

〈페르세우스〉는 한 번에 주조된 대형 청동상이다. 이는 당시에도 매우 위험한 방식이었다. 실패하면 재료와 명성, 후원이 동시에 무너진다. 첼리니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 주조 과정이 거의 재난에 가까웠다고 기록한다. 용광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그는 집 안의 금속 기물까지 녹여 붓게 했다고 서술한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과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첼리니가 이 과정을 영웅 서사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기술은 결과뿐 아니라 이야기까지 포함했다. 성공한 주조는 작품을 넘어 작가의 신화를 완성했다.

절제된 승리의 이미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 부분

벤베누토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머리〉 부분

By Dimitris Kamaras, CC BY 2.0, wikimedia commons.

이 조각에서 눈에 띄는 것은 페르세우스의 얼굴이다. 승리의 환희는 없다. 대신 감정을 절제한 냉정한 표정이 있다. 메두사의 머리는 높이 들려 있지만 과장된 제스처는 아니다. 발밑에 놓인 메두사의 몸과 흐르는 피는 처형 이후의 질서를 암시한다.

이 조형은 영웅담이라기보다 통제의 이미지에 가깝다. 이는 권력을 위한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첼리니 자신의 태도를 닮아 있다. 그는 자신을 흔들리는 장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제어하는 존재로 제시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신화적 관점에서만 읽으면 핵심을 놓치고 만다.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 작품은 르네상스 특유의 밝은 조화보다는, 후기 르네상스가 지닌 공격성과 야심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 점에서 오히려 오늘날의 감각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페르세우스〉는 첼리니라는 작가를 함께 염두에 둘 때, 그 선택과 태도가 한층 분명해진다.

어떤 면에서 이 조각은 단순한 신화의 재현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성향이 투영된 결과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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