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번스의 〈올드 랭 사인〉에 피아노 반주가 포함된 최초의 출판본(1799년)
By Robert Burns and Leopold Kozeluch,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축배를 올리자
한국의 기억 속 ‘올드 랭 사인’
한때 이 노래는 한국인의 첫 애국가 멜로디였다. 19세기 말, 대한제국에는 공식 국가가 없었고, 선교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서양의 선율에 가사를 얹어 부르곤 했다. 그중 가장 널리 쓰인 곡이 바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익숙한 애국가 가사는 처음에는 바로 이 곡의 선율에 맞춰 불려졌다. 이 노래는 민중에게 자긍심과 희망을 주었고, 교회와 학교, 독립협회 모임에서 함께 울려 퍼졌다. 즉, 〈올드 랭 사인〉은 한국에서 ‘독립의 노래’로 불렸던 유럽의 곡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옛 노래
〈Auld Lang Syne〉의 기원은 18세기 스코틀랜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가 1788년에 이 노래를 민요의 형태로 기록해 Scots Musical Museum에 보냈다. 당시 그는, 자신은 그저 한 노인을 통해 들은 아주 오래된 노래를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밝혔다.
1799년 에든버러의 출판가 조지 톰슨이 이 노래를 민요 선집에 실으며, 작곡가 레오폴드 코젤루흐가 선율과 피아노 반주를 붙였다. 이 버전이 오늘날 〈올드 랭 사인〉의 형태가 되었다.
제목의 Auld Lang Syne은 스코츠어로 “오래된 옛 시절(for old long since)” 즉, “지나간 좋은 시절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이 노래는 본래 오랜 우정과 세월을 기리는 민요였다. “옛 친구를 잊을 수 있을까?”로 시작하는 가사는 이별의 순간, 혹은 새해의 시작에 어울리는 정서로 사랑받았다.

전 세계로 퍼진 멜로디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로 퍼지면서 〈올드 랭 사인〉도 함께 전해졌다.
- 미국의 노예제 폐지론자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William Lloyd Garrison)은 이 곡에 ‘노예 해방의 노래(The Song of the Abolitionist)’를 붙였고, 자메이카의 해방 노예들은 같은 선율로 자유의 노래를 불렀다.
- 제1차 세계대전, 끝없이 이어지는 참호전의 절망 속에서 병사들은 “We are here because we are here(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는 우리가 여기 있기 때문이야)”라는 자조 섞인 가사를 흥얼거렸다.
이처럼 올드 랭 사인은 세계인의 공통 감정 – 이별, 추억, 연대 – 을 담은 상징적인 멜로디가 되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참호전의 절망적이고 부조리한 상
새해의 노래가 되기까지
19세기 런던의 스코틀랜드 교민들은 해마다 세인트 폴 성당 앞에서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새해를 맞았다. 이 전통은 뉴욕 타임스스퀘어로 이어져, 1929년 밴드리더 가이 롬바르도(Guy Lombardo)가 방송을 통해 연주하면서 “미스터 뉴 이어 이브(Mr. New Year’s Eve)”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이후, 자정의 폭죽과 함께 울려 퍼지는 전 세계의 새해 노래가 되었다.
언어와 경계를 넘어
흥미롭게도 러시아는 로버트 번스를 ‘인민의 시인’이라 부르며, 〈올드 랭 사인〉을 ‘오래된 우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불렀다. 일본에서는 ‘반딧불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졸업식 노래의 대명사가 되었고, 중국에서는 작별의 노래로, 한국에서는 ‘석별의 정’이라는 이별의 노래로 재해석되었다.
오늘날 〈올드 랭 사인〉은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곡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시대가 달라도, 가사가 달라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이 단순한 선율의 힘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