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젓이 걸린 위조품, 우리가 믿는 미술관의 또 다른 얼굴

진품의 권위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서퍽풍경 위조

“서퍽 풍경”,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 위조작, [애쉬몰린 박물관]

 

진품을 마주한다는 착각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 걸린 그림과 조각들. 관람객은 당연히 그것들이 진품일 거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위조품, 모작, 과도하게 복원된 작품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품 행세를 하며 전시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그 사실을 전문가들조차 때때로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한다는 점이다. 미술계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진품과 위조의 경계’가 흐릿해졌으며, 어느 순간부터 위조조차도 예술의 일부로 편입되는 묘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가짜가 필요한 시대는 늘 있었다

미술품 위조의 역사는 짧지 않다. 고대 로마 시대,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열렬히 동경했다. 조각상, 보석, 유리제품 등 그리스 예술을 재현한 ‘로마판 그리스 유물’이 쏟아졌고, 그중 상당수는 진품처럼 여겨졌다. 특히 로마 장인들이 제작한 인탈리오(Intaglio, 음각 보석)는 지금도 진짜 그리스산인지, 정교한 위조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현상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중국 고대 도자기나 청동기의 위조품도 오래전부터 대량으로 제작됐고, 일본 우키요에(Ukiyo-e) 판화 역시 에도 시대부터 복제품이 공공연히 유통됐다.

거장들의 작업실에서 탄생한 위조

놀랍게도, 위조는 무명의 장인만의 일이 아니었다. 도나텔로(Donatello)나 베로키오(Verrocchio) 같은 르네상스 거장들은 고대풍 조각을 제작해 판매했고, 오늘날 일부 작품은 진품으로 오인돼 미술관에 당당히 전시돼 있다.

회화도 다르지 않았다. 루벤스(Rubens)의 작업실에서는 제자들이 스승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들이 다수 제작됐고, 엘 그레코(El Greco)의 조수들도 그의 스타일을 흉내 낸 작품을 여럿 남겼다. 시간이 흐르며 이들 상당수가 진품으로 인정받는 현실은 이제 그리 놀랍지도 않다.

심지어 일부 유명 작가의 경우, 사후에 엄청난 규모의 위조 작품이 제작되기도 했다. 뒤러(Albrecht Dürer)가 남긴 목판화와 드로잉은 그의 죽음 이후 수천 점이 위조돼 퍼졌고,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섬세한 연필 드로잉 역시 절반 가까이가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수하는 여인 위조

한 판 메헤렌의 베르메르 작품 위조, 워싱턴 D.C. 국립미술관 소장

미술관도 속는다, 알고도 보여준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미술관들이라 해도 위조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바티칸 소장 고대 로마 조각상 중 상당수는 사실 18세기 유럽에서 제작된 모조품이라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학계에 회자돼 왔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게티 미술관 등도 진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까지도 위조 논란은 계속된다.

렘브란트(Rembrandt)의 작품 상당수가 사실은 그의 제자나 동료들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들은 여전히 미술관 벽에 걸려 ‘렘브란트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의 미공개 작품이라는 그림이 공개됐지만, 뒤편의 포장 박스에서 최근 생산된 바코드가 발견되며 결국 위조임이 밝혀졌다. 그 역시 위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표적인 현대 작가다.

피카소(Pablo Picasso) 역시 수천 점에 이르는 위조 드로잉과 판화가 전 세계 시장을 떠돌고 있다. 피카소 본인이 “내 그림은 흉내 내기 쉬울 것이다”라며 농담처럼 말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가짜도 결국 역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시간이 흐르면 위조품조차 그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의 ‘그리스풍’ 조각, 18세기 유럽의 ‘이집트풍’ 공예품, 19세기 동양풍 모조품들은 이제 단순한 위조를 넘어 시대의 욕망과 문화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예술에서 ‘진짜’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작품의 출처보다 그 배경과 맥락, 인간의 욕망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가 진짜로 봐야 할 것

미술관을 찾는 이유가 ‘진품 감상’에만 있다면, 때로는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벽에 걸린 것이 진짜든, 가짜든, 혹은 그 경계가 모호하든, 작품을 둘러싼 진실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야말로 진정한 감상의 시작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의 미술관에서 위조는 숨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찬탄 속에 태연하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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