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 우리 안에서 무엇이 사라질까? 그리고 그 ‘무엇’이 실제로 무게를 가진다면, 과학은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 미국의 한 의사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는 죽음의 순간을 저울 위에 올렸다.
죽음의 저울, 던컨 맥두걸의 실험
던컨 맥두걸, 1911,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1901년 4월 10일, 매사추세츠의 한 요양원에서 의사 던컨 맥두걸(Duncan MacDougall)은 임종을 앞둔 환자를 특별히 제작한 대형 정밀 저울 위에 눕혔다. 그는 죽음이 단순한 생물학적 소멸이 아니라, 비물질적 ‘영혼’이 몸을 떠나는 사건이라고 믿었다. 영혼이 존재한다면 공간을 차지할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무게를 가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는 여섯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사망 직전과 직후의 체중을 비교했다. 결과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첫 번째 환자의 경우 사망 직후 3/4온스(약 21그램)가 줄었다. 이 숫자는 곧 신화가 되었다. 1907년 논문에서 그는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해 보고하며, 죽음과 함께 사라진 이 무게가 영혼이 몸을 떠나는 현상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실험이 지나치게 작은 규모였음을 인정했다. 더 많은 사례가 필요했지만 윤리적·실무적 제약 속에서 실험은 확장되지 못했다.
신화 뒤에 남은 과학적 그림자
맥두걸의 시도는 오늘날의 과학 기준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첫째, 표본 수가 지나치게 적고, 결과도 일관되지 않았다. 둘째, 사망 직후의 무게 변화는 체온 하강, 수분 증발, 폐의 공기 압력 변화 등 생리적 요인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셋째, ‘영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물리적 정의를 결여한 추상적 대상이기 때문에 실험 설계의 전제부터 불안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은 20세기 초 과학이 가졌던 ‘비가시적 현상을 측정하려는 욕망’을 잘 보여준다. 당시 과학자들은 전자기파, X선, 방사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막 발견하던 시기였다. ‘보이지 않는 것’이 실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영혼’도 언젠가 계량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낙관이 퍼졌던 것이다.
현대 과학의 도전: 정보와 의식의 무게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영혼의 무게”를 직접 재려는 시도는 사라졌지만, ‘의식’이 물리적 실체를 갖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에는 ‘영혼’을 ‘정보’나 ‘에너지’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있다.
듀크대학교의 엔지니어 제리 나흄(Gerry Nahum)은 의식을 하나의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본다. 만약 의식이 정보를 담고 있고, 정보가 곧 에너지와 등가라면, 이론적으로는 측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전자기적 센서를 이용한 실험 장치를 구상 중이며, 자금 확보를 위해 연구 제안을 계속 내고 있다. 이 시도는 단순한 오컬트적 호기심이 아니라, 물리학과 신경과학의 경계에서 ‘의식의 물리적 흔적’을 탐색하는 새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과 신앙의 경계에서
오늘날 신경과학은 의식을 뉴런의 활동 패턴, 즉 뇌의 전기적·화학적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의식의 주관적 경험(qualia)’, 곧 ‘나’로서 느끼는 자아의 감각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이 틈새 속에서 ‘21그램’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인간이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방식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21그램의 신화는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우리가 단순히 질량과 에너지로 환원될 수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죽음의 순간, 저울 위에서 사라진 것은 단순한 수분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 존재의 본질일까?
21그램, 영상으로 확장되다
영화 〈21그램〉(2003)은 이 신화를 인간의 구원 서사로 치환했다. 그곳에서 21그램은 영혼의 무게이자, 삶의 무게이며, 죄책감과 사랑, 기억의 무게다. 과학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문학과 철학, 예술은 계속해서 그 빈칸을 채워나가고 있다.
결국, “21그램은 진짜 영혼의 무게일까?”라는 질문은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의미의 문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