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Dadaism)은 무엇이었는가

1920년 6월 5일, 베를린에서 열린 첫 다다 전시회의 개막식 사진

1920년 6월 5일, 베를린에서 열린 첫 다다 전시회의 개막식.

By Unknown author,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탄생의 조건

다다이즘(Dadaism)은 191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 전역을 휩쓸던 시기, 전쟁에 반대하거나 참전을 거부한 예술가와 문인들이 중립국 스위스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공유한 문제의식은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었다. 이성, 합리성, 진보라는 이름의 사고가 어떻게 전쟁을 가능하게 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다다이즘은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을 낳은 사고 체계 전체에 대한 부정이었다.

예술을 부정한 예술

다다이스트(Dadaist)들은 기존 예술의 기준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미적 완성, 기술적 숙련, 의미 있는 주제는 더 이상 필수 조건이 아니었다. 그 대신 우연, 파괴, 조합, 비논리가 창작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이 점에서 다다이즘은 ‘새로운 양식’을 만들려는 운동이 아니었다. 다다는 예술이라는 제도 자체를 의심한 태도였다.

이름조차 우연이었다

『안나 블루메』 시집 표지

『안나 블루메(Anna Blume)』 시집 표지, 1919년.

By Kurt Schwitters,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다다(dada)’라는 명칭에는 애초부터 분명한 의미가 없었다.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는 프랑스어 사전을 무작위로 펼쳐 이 단어를 선택했다. 프랑스어에서 ‘dada’는 유아 언어로, 나무 말이나 말(馬)을 가리키는 소리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단어의 뜻이 아니라 선택 방식이었다. 다다는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를 전제하지 않으려는 선택의 결과였다. 이 점에서 이름 자체가 다다이즘의 방법론을 드러낸다.

우연은 방법이 아니라 입장이다

다다이스트들은 신문 기사에서 단어를 오려 무작위로 섞어 시(詩)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는 새로운 기교나 실험적 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성 중심 사고에 대한 거부 선언이었다.

이성적 판단, 질서, 논리가 전쟁을 정당화했다면, 다다이스트들은 비이성, 우연성, 파편성을 통해 그 사고방식 자체를 해체하고자 했다.

주요 인물과 활동

미소를 띠고 각기 다른 자세로 선 다다 그룹의 단체 사진

미소를 띠고 각기 다른 자세로 선 다다 그룹의 단체 사진

By Inconnu. Travail collectif,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사진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뒷줄: 루이 아라공, 테오도르 프랑켈, 폴 엘뤼아르, 에마뉘엘 페이,.

두 번째 줄: 폴 데르메, 필리프 수포, 조르주 리브몽-데세뉴.

앞줄: 트리스탄 차라, 셀린 아르노, 프랑시스 피카비아, 앙드레 브르통.

다다이즘에는 막스 에른스트, 마르셀 뒤샹, 맨 레이 등 다양한 예술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회화(painting), 콜라주(collage), 레디메이드(readymade), 퍼포먼스, 문학 등 매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리는 실천을 전개했다.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1917년

마르셀 뒤샹, 「샘(Fountain)」, 1917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촬영)

By Marcel Duchamp/Alfred Stieglitz,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특히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기존 사물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제시함으로써, “예술은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해체와 이행

다다이즘은 1922년경 조직적 운동으로서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는 실패라기보다 의도된 소멸에 가까웠다. 다다는 체계를 세우거나 지속 가능한 학파를 만드는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다수의 인물들은 초현실주의(Surrealism)로 이동했다. 다다가 파괴의 역할을 맡았다면, 초현실주의는 그 잔해 위에서 무의식과 상상력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다.

다다이즘의 정확한 의미

다다이즘은 하나의 스타일도, 학교도, 지속 가능한 체계도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등장한 태도이자 질문이었다. 예술은 반드시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 창작은 고도의 기술을 전제로 해야 하는가, 이성과 합리성은 언제나 긍정적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들이 다다이즘 안에서 제기되었다. 다다는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사라졌고, 바로 그 점에서 다다이즘은 오늘날의 현대미술로 향하는 출발점에 가장 가까운 운동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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