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각(synesthesia) ᅳ 감각들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공감각을 표현하는 것 같은 그림

감각이 섞인다는 것

보통 인간의 감각 체계는 분리되어 작동한다. 시각은 후두엽에서, 청각은 측두엽에서, 촉각과 미각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 처리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뇌에서는 이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소리를 들을 때 색이 떠오르고, 숫자를 볼 때 특정한 질감이나 감정이 함께 느껴진다. 이 현상이 바로 공감각(synesthesia)이다.

공감각자는 감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경계가 느슨하게 태어난 사람들이다.

뇌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일

공감각의 핵심은 감각 피질 간의 교차 활성(cross-activation)에 있다. 예를 들어, 숫자와 색이 연결되는 형태의 공감각에서는 뇌의 ‘숫자 인식 영역(angular gyrus, 혹은 fusiform gyrus의 숫자 처리 부위)’과 ‘색채 인식 영역(V4)’이 서로 인접하거나, 연결 신호가 과도하게 남아 있는 상태로 작동한다.

유아기에는 모든 감각 경로가 넓게 연결되어 있지만,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연결은 가지치기처럼 정리된다. 공감각자는 이 가지치기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감각 간 연결이 성인기에도 잔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그들의 뇌는 감각을 분리하는 대신, 연합하도록 설계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이 겹치는 인식의 형태

이 교차 활성은 단순히 감각의 착오가 아니라, 감각 정보가 저장되고 호출되는 방식의 차이를 만든다. 공감각자는 단어, 숫자, 음악 등을 색과 형태, 혹은 질감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 결과, 기억이 시각적·공간적으로 인코딩되어 비범한 기억력이나 직관적 연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국 출신의 서번트 다니엘 태밋(Daniel Tammet)이 그 대표적 예다. 그는 π(원주율)를 소수점 이하 22,514자리까지 외우는데, 그에게 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어지는 풍경처럼 보인다. 이처럼 감각이 중첩된 인식 구조는 정보를 ‘기호’가 아니라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감각이 협력하는 뇌

뇌는 원래 감각을 분리하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한다. 시각은 공간을, 청각은 시간의 변화를 인식하며 이 두 정보는 항상 함께 작동한다. 공감각은 이런 협력 구조가 한층 깊어진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즉, 공감각은 감각 체계의 변형이 아니라 확장된 통합 방식이다.

감각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뇌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색으로 느껴지는 소리이든, 질감으로 기억되는 숫자이든 말이다.

인식의 다양성으로서의 공감각

공감각은 희귀한 특이 현상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 인식의 구조가 얼마나 유연한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감각은 본래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기 위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감각은 그 연결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난 상태일 뿐이다.

공감각자의 뇌는 우리와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공감각은 뇌의 오류가 아니라 인식의 또 다른 층위다. 감각의 경계가 흐려질 때, 우리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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