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읽는 사람들: 슈퍼 인식자(super-recognizer)의 세계

슈퍼 인식자를 상징하려는 시도_눈 이미지

슈퍼 인식자라는 용어의 기원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은 금세 잊히고, 몇몇은 흐릿한 인상만 남긴다. 그런데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단 한 번 본 얼굴도 놀라울 정도의 정확도로 기억해낸다. 이들은 ‘슈퍼 인식자(super-recognizer)’라 불린다.

2009년, 하버드대학교의 리처드 러셀(Richard Russell), 켄 나카야마(Ken Nakayama), 런던대학교의 브래드 듀셰인(Brad Duchaine)이 발표한 공동 연구 논문은 이 독특한 능력을 학술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연구로 꼽힌다. 이후 이 개념은 얼굴 인식 연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인식 방식의 차이

2009년의 연구에서 슈퍼 인식자들은 얼굴 전체를 인상으로 처리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얼굴의 미세한 차이를 훨씬 정교하게 구분하는 능력을 보였다. 이는 단순한 기억력의 차이가 아니라, 얼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구조적 차이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후 진행된 엑서터대학교와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연구는 이러한 관찰을 더 구체화했다. 연구진은 얼굴의 일부만 보여주는 실험과 시선추적(eye-tracking)을 이용해 참가자들의 인식 전략을 분석했다. 그 결과, 슈퍼 인식자들은 눈처럼 전통적으로 중요한 단서에만 시선을 집중하지 않고, 얼굴의 다른 영역까지 폭넓게 살피며 정보를 수집했다.

얼굴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식

우리가 얼굴을 기억하는 방식은 주로 ‘전체적인 인상’에 가깝다. 전체 비율, 눈·코·입의 배치, 표정 등을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들인 뒤, 다음 번에 그 인상을 떠올려 동일 인물인지 판단한다.

하지만 슈퍼 인식자들은 이와 전혀 다른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에게 얼굴은 퍼즐처럼 조각난 정보의 집합이다. 이마의 윤곽, 광대뼈의 각도, 턱선, 입술의 기울기, 눈밑 그림자의 형태 등 미세한 단서들이 각각 따로 저장되고, 다시 결합된다. 즉, 얼굴 전체를 한 번에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세부 요소를 분해해 기억하고 이를 조합해 인물을 식별하는 방식이 슈퍼 인식자의 특징이다.

실험으로 드러난 차이

슈퍼 인식자 02

슈퍼 인식자의 능력은 실험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연구팀은 부분적으로 가려진 얼굴 사진을 보여준 뒤, 새로운 얼굴들 사이에서 앞서 본 얼굴을 고르는 과제를 제시했다. 일반인은 눈·코·입 중 한두 곳이 가려지면 인식이 크게 흔들렸지만, 슈퍼 인식자들은 얼굴의 아주 작은 부분만 보고도 높은 정확도를 유지했다.

시선추적(eye-tracking)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차이가 나타난다. 기존에는 얼굴 인식에서 ‘눈’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슈퍼 인식자들은 오히려 눈에 덜 의존하고 시선을 더 넓게 분산시킨다. 이들은 얼굴의 다양한 특징을 고르게 살펴보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능력이 생길까?

아직 뚜렷한 결론은 없다. 다만 기존 연구들은 슈퍼 인식자의 능력이 단순히 “좋은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얼굴을 입력하는 인지 전략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전적 요인, 발달 과정, 사회적 경험 등 여러 변수가 가능하지만, 아직 어느 하나도 결정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정상적인 얼굴 인식 능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범주라는 점은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얼굴이 중요한 직업에서의 활용

슈퍼 인식자는 단순한 심리적 호기심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여러 경찰청에서는 이 능력을 실제 업무에 활용한다. 감시카메라 속 흐릿한 얼굴을 식별하거나 군중 속 특정 인물을 찾아내는 일, 신원 확인 오류를 줄이는 작업 등은 일반인에게는 어려워도, 슈퍼 인식자에게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작업이다.

슈퍼 인식자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발견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이루며, 이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 위치한 이들이 바로 슈퍼 인식자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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