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올로 베로네세, 「솔로몬의 재판」(1580년경)
By Paolo Veronese,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타인에 대한 통찰과 자기 판단의 한계
사람은 타인의 문제를 판단할 때는 비교적 침착하고 이성적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면 감정에 휘말려 균형을 잃기 쉽다. 이 현상을 솔로몬의 역설(Solomon’s Paradox)이라 부른다.
이는 “지혜로운 사람조차 자기 일 앞에서는 현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인간 인지의 특징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왜 우리는 내 문제 앞에서 흔들릴까
솔로몬의 역설은 판단의 비대칭성을 설명한다. 우리는 타인의 문제 앞에서는 객관적이지만,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감정이 개입하며 시야가 좁아진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신이 직접 관련된 문제에서는 자아 보호 욕구와 감정 반응이 강하게 작동한다. 분노, 상처, 두려움 같은 정서가 사고 과정에 개입하면서 관점이 좁아진다.
반대로, 타인의 문제를 바라볼 때는 심리적 거리가 생긴다. 이 거리는 감정의 강도를 낮추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돕는다. 즉, 지혜는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 조절 능력’의 문제일 수 있다.
성경 속 솔로몬 왕에서 시작된 이름
이 개념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에서 유래한다. 그는 두 여인이 한 아기의 어머니라고 주장한 사건에서, 아기를 둘로 나누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진짜 어머니를 가려낸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사례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그는 많은 아내와 후궁을 두었고, 말년에는 종교적·정치적 갈등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타인의 분쟁은 현명하게 해결했지만, 자신의 삶과 통치에서는 이상적인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이러한 상징적 대비에 착안해,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의 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만(Igor Grossmann)은 사람들이 타인의 문제에는 지혜롭게 판단하면서도 자기 문제에서는 그렇지 못한 현상을 연구했고, 이를 ‘솔로몬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관계 갈등 실험
2014년, 워털루대학교의 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만은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이선 크로스(Ethan Kross) 교수 등과 함께 공동 연구를 통해 솔로몬의 역설을 실험적으로 검증했다. 연구는 연인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 상황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참가자들은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 한 집단은 자신이 연인에게 배신당한 상황을 상상했고, 다른 집단은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상상했다. 이후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추론을 분석하여 관점의 통합성, 타협 가능성 인식, 장기적 전망 고려 능력 등을 바탕으로 ‘지혜 수준’을 평가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자기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갈등을 판단한 집단이 더 높은 지혜 점수를 보였다.
이 경향은 특정 연령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20~40세 집단뿐 아니라 60~80세 집단에서도 동일한 패턴이 나타났다. 이는 연령이 높아진다고 해서 자기 관련 문제에서 자동적으로 더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지혜는 능력이 아니라 관점이다
솔로몬의 역설은 인간 사고의 근본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결코 감정과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연구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자신의 문제를 제3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거리 두기(self-distancing)’ 전략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대신, “그 사람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스스로를 3인칭으로 바라보면 사고의 폭이 넓어진다는 연구들이 보고되어 있다.
마무리하며
솔로몬의 역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말한다. 우리는 남의 인생에는 조언을 잘하면서 정작 자신의 선택 앞에서는 쉽게 흔들린다.
그러나 이 역설은 단순히 약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혜가 타고나는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관점을 조절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