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클로드 모네, 〈풀밭 위의 점심, 1865–1866, Public Domain, wikimedia commons.
피크닉의 어원
‘피크닉(picnic)’이라는 말은 17세기 프랑스어 피크니크(pique-nique)에서 유래했다. 이는 piquer(집다, 조금씩 먹다)와 -nique(작은 것, 하찮은 것)가 결합된 말로, 본래는 “작은 것을 집어 먹는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당시에는 각자가 음식을 조금씩 가져와 함께 나누어 먹는 사교적 모임을 뜻했지만, 오늘날의 피크닉은 그 이름과 달리 결코 소박하지 않은 풍습이 되었다.
프랑스 귀족이 만든 새로운 유행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많은 귀족들이 파리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들은 처형의 공포를 피해 도망치며 자신들이 즐기던 야외 식사 문화를 함께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영국 사회에 ‘피크닉’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된 계기다. 프랑스 귀족들에게 피크닉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교와 세련된 취향의 표현이었다.
19세기 초, 런던 시즌의 사교 행사로
1801년, 약 200명의 부유한 프랑스 문화 애호가들이 “피크닉 소사이어티(Pic Nic Society)”를 결성했다. 이 단체의 등장과 함께 런던의 사교 시즌(London Season) ᅳ 무도회와 야외 행사가 이어지던 시기 ᅳ 에 공원과 들판은 화려한 식탁으로 가득 찼다.
특히 더비 경마대회(Derby) 같은 행사는 피크닉 문화의 절정이었다. 고급 식료품점 Fortnum & Mason은 대회 당일 새벽 4시부터 문을 열어, 귀족들의 마차에 더비 햄퍼(Derby Hamper)라 불린 거대한 음식 바구니를 실었다.
그 안에는 여러 병의 샴페인과 와인, 브랜디와 탄산수, 바닷가재와 비둘기 파이, 젤리에 담긴 멧돼지 머리, 햄과 치즈, 신선한 과일 등이 들어 있었다. 오늘날의 피크닉과 달리, 당시의 피크닉은 이동식 연회에 가까운 행사였다.
여행자들의 ‘주머니 음식’
하지만 피크닉의 본질은 언제나 간편함과 이동성에 있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손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 즉 오늘날의 간식 문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발명품들도 등장했다.

노른자가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스코치 에그 (출처: 픽사베이)
그 대표적인 예가 스코치 에그(Scotch egg)다. 1730년대에 여행자들을 위해 고안된 이 음식은 삶은 달걀을 고기 반죽으로 감싸 튀겨 만든 간편식이었다. 휴대가 쉽고 영양이 높아 장거리 이동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결국 피크닉은 단순한 야외 식사가 아니라, 망명한 프랑스 귀족들이 영국 사회에 남긴 문화적 흔적이자, 이동과 자유, 그리고 우아함이 어우러진 새로운 생활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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